[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못생겼지만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인 같은 드라마

2025.08.04 16:25:31 16면

언테임드 – 마크 L.스미스, 엘르 스미스

 

호주 출신의 배우 에릭 바나는 은근히 팬이 많은 세계적 스타이다. 그가 ‘블랙 호크 다운’이나 ‘헐크’ ‘트로이’ ‘뮌헨’에 나왔던 2002년~2006년은 그의 인기의 꼭짓점이었다. 모든 스타의 인기는 5년 안팎이 절정이며 그건 인생의 헤이데이(heyday)가 딱 그 정도인 것과 비교적 정확하게 닮아있다. 에릭 바나는 최근 들어 ‘블루백’ 같은 해양 환경 영화에서 작은 역을 맡는가 하면 ‘드라이’ 같은 호주의 자국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다. 그는 68년생이고 57세이며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배우’이다. 그런 에릭 바나가 주인공인 넷플릭스 드라마가 ‘언테임드’이다. 6부작이다. 당연히 시청을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되는 데다 샘 닐(뉴질랜드 출신)이 나오고 영화광들에게 한때 사랑받았던 로즈마리 드윗(‘레이첼, 결혼하다’, 2008, 조너선 드미 감독)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바로바로 ‘픽’하게 되는 드라마임에도 ‘언테임드’는 제목처럼 종종 길들여지지 않는 요세미티 계곡에서처럼 길을 잃는다. 그냥 잃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잃는다. 대본상의 서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며 캐릭터의 일관성도 주인공인 카일 터너(에릭 바나)와 후배 수사관 나야(릴리 산티아고) 외에는 그리 탄탄하지 못한다. 왔다 갔다 한다. 스토리는 이야기를 벌리고 좁히는 리듬감에서도 실패해서 전체적 균질감이 그리 두텁지 못하다. 이런 유의 드라마를 두고 비평 쪽에서는 대체로 ‘못 만든 작품’이라는 단정적인 어휘를 쓴다. 최근의 한국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주인공이 영화 속 웹 작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있다. “작가님. 이번 작품은 정말 최악이에요.” 드라마 ‘언테임드’의 연출가인 마크 L. 스미스, 엘르 스미스 (둘은 아버지와 딸이다)에게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감독님들. 이번 작품은 정말 최악이에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기이한 매력이 담겨 있고 6부를 이어 볼수록 작품 속으로 기이하게 스며들게 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요세미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릭 바나도 샘 닐도 아닌 바로 캘리포니아의 국립공원 요세미티이다. 서울의 다섯 배 크기에 해당한다는 절벽과 폭포의 천연 지역인 요세미티는 이 드라마의 앞이자 뒤이자, 그리고 전부이다. 모든 사건은 요세미티에서 벌어지며 이 안에서의 인간들, 주인공인 카일 터너과 그의 상관인 폴(샘 닐), 그의 전처인 질(로즈마리 드윗), 그리고 부하 요원인 나야는 대체로 대책이 없다. 사건은 좇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풀리기보다는 어쩌면 이 위대한 자연이 스스로 그 범행의 민낯을 드러나게 하는 면이 있다. 이렇게 얘기한다면, 무엇보다 비평적으로 상당히 양보해서 얘기한다면, 그렇기에 대본상에서 ‘구멍이 숭숭 보인다 해도’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대본이 마치 요세미티가 지닌 자연의 위대함처럼 스스로의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다소 나이브한 생각이 감독 둘에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면 수긍할 수도 있겠다.

 

 

이 드라마는 요세미티에서 가장 유명한 지점을 드라마의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있다. 첫 장면, 곧 두 젊은이가 암벽을 타다가 위에서 추락하는 여인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은 요세미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하프 돔’ 절벽에서 찍혔다. 이 씬은 매우 정교하게 찍혔으며(고공에서 여자가 추락하고 두 암벽 등반의 젊은이들이 딸려 추락하도록 동선을 디자인했다) 이 드라마에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요세미티의 또 다른 유명 지역인 글레이셔 포인트(Gracier Point, 전망대)는 영화 중반 살해당한 여자아이 루시(에즈라 프랭키)의 엄마가 시한부로 죽어 가면서 종종 명상하는 지점의 배경이 된다. 주인공 카일 터너가 가끔 심하게 괴롭거나 외로울 때 찾는, 아무런 조건 없이 살을 섞는 여인으로 라나라는 이름의 호텔리어(알렉산드라 카스틸로)는 터너 앞에서 관광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방에서는 요세미티 폭포가 한눈에 들어올 거요.”(상냥하고 가식적인 미소.)

 

 

따라서 6부작 드라마 ‘언테임드’는 주인공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인 작품이다. 대체로 미지의 공간, 위대한 자연이 그 속살을 살짝살짝 보여주는 작품의 경우는 대체로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그 아우라가 드라마에 스며들게 만든다. 그러니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우리는 거대한 자연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어차피 다 알아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신비주의가 이 드라마 전체를 휘감고 있다.

 

나중에 루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는 첫 장면의 제인 도우(신원 미상의 여성 시체) 모습은 마치 그 옛날의 전설적 드라마로 데이비드 린치의 최고작 가운데 하나인 ‘트윈 픽스’를 닮아있다. ISB 특수요원 카일은 비닐 백에 누워있는 여자의 처참한 시체를 보면서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과거 ‘트윈 픽스’의 FBI 요원 쿠퍼(카일 맥라클란)가 로라 파머(셰릴 리)의 시체를 봤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ISB(Investigative Services Branch)는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의 실제 부서로 국립공원 내 범죄 수사를 담당한다. 드라마 ‘언테임드’는 절벽에서 떨어진 여성 시체의 수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 요세미티 계곡에 많은, 게다가 추악하기까지 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모든 사람이 다 비밀을 갖고 있음을 그리는 내용이다. 각자의 비밀은, 대개가 그렇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이 은폐한 살인 범행은 또 다른 자의 살해 행위로 이어진다. 어떤 이가 숨겨 놓은 딸은 누구의 범행 대상이었거나 아예 스스로 범죄 행위에 나서기도 한다. 다 연결돼 있다. ‘언테임드’는 결코 풀리지 않는 야생의 매듭 같은 내용이다. 그 이음새의 순간을 눈치채고 궁극의 범인이 누구일 거라고 제5회쯤에 번쩍, 깨달음이 온다면 당신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대가급 독자이거나 관객, 혹은 시청자가 될 것이다.

 

 

계곡의 살인자를 좇는 얘기이고 계곡 깊숙이 모여 사는 히피 집단이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그것도 다 맥거핀(눈속임 설정)이다. 드라마 ‘언테임드’의 살인사건 자체가 어쩌면 맥거핀이다. 그보다 이 드라마는 ‘상처’에 대한 얘기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죄 트라우마를 지닌다. 카일 터너는 케일럽이라는 이름의 어린 아들을 잃었다. 짐작하건대 어떤 소아성애자에게 유린당하고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역시 그때도 ISB 요원이었던 터너는 그 아동 살해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한 바 있다. 터너는 여전히 숲속에서 혼자 아이와 대화하며 지낸다. 정상이 아니다. 그의 전처인 질은 재혼해서 살지만, 그녀의 정신상태 역시 온전하지 않다. 자식을 잃은 남녀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터너의 부하인 나야 역시 살얼음판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녀는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아들을 데리고 LA라는 도시 경찰의 삶을 포기한 채 요세미티에 온 인물이다. 터너의 상관인 폴 역시 손녀 한 명을 잃었다. 그의 일상은 늘 자조적이며 관조적이다. 따라서 ‘언테임드’의 등장인물들 모두는 외곽의 범인을 쫓으면서 동시에 자기 내면에 있는 어둠으로부터 쫓기고 있다. ‘언테임드’는 그 이중의 고리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언테임드’의 마지막 장면이 좋다. 키 워드는 카일 터너가 남기고 간 그의 애마, 뒤에 남겨진 수사관 나야, 그리고 사슴 떼이다. 이 장면 역시 잘 찍혔다. 요세미티에 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인생은 때론 매우 비논리적이며 부조리하고 직관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드라마 ‘언테임드’는 못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 기억 속에 이미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언테임드’는 못생겼지만 기이한 매력이 차고 넘치는 여인 같은 작품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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