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축산업계와 유통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방역 당국은 살처분과 이동 제한 등 긴급 조치를 발동했지만, 닭고기·돼지고기 등 주요 축산물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3일 파주의 한 토종닭 농장에서 올해 첫 고병원성 AI 확진이 나왔다. 이번 발생은 예년 10~11월보다 한 달가량 빠른 시점이다. 이어 14일에는 연천군의 한 양돈 농장에서 ASF가 확인됐다. 이 농장은 약 1000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으며, 당국은 전두수 살처분과 반경 10㎞ 내 이동 제한을 즉각 시행했다. ASF는 치료제나 백신이 없어 발생 시 살처분이 불가피한 치명적 전염병이다.
농가들은 “가을철 전염병 악몽이 현실화됐다”며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AI가 철새 도래 시기에 발생하면서 감염 확산 우려가 더 크다. 파주의 한 양계 농민은 “출하 지연과 유통 제한까지 겹치면 사실상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ASF 발생 농가 역시 충격이 크다. 연천 지역 한 돼지 농가는 “수년간 방역에 신경을 썼는데도 막지 못했다”며 허탈감을 드러냈다.
유통업계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AI는 닭과 계란의 유통을 제한하고, ASF는 돼지고기 가격을 직접 흔든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는 이미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소매 유통망 역시 공급 차질과 가격 변동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소비자 체감 불안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육류가격지수는 소고기·양고기를 중심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교적 안정세였던 돼지고기마저 ASF로 불안정해지면 생활물가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달걀과 닭고기 가격도 계절적 요인과 생산성 저하로 이미 상승세를 보여온 만큼,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장바구니 물가는 더욱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농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AI와 ASF가 동시에 발생하면 단기적 공급 차질과 가격 급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며 “방역망 강화뿐 아니라 유통 경로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농업경제 전문가들도 “국내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면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국제 곡물가와 환율 변동이 겹쳐 물가 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역 당국은 초동방역팀과 역학조사반을 현장에 급파해 외부인·가축·차량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소독과 장화 교체 등 기본 방역 수칙 준수를 강력히 당부하고 있다. 다만 올가을 기온 변화와 인구 이동 증가로 전염병 확산 위험이 높은 만큼 농가와 유통업계의 긴장 국면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