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섭의 이심전심(以心傳心)] 한류, 글로벌시대의 전략 자산

2025.09.25 06:00:00 13면

 

1990년대 후반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K-드라마와 K-팝 열풍은 한류(韓流)의 출발을 알렸다. 당시만 해도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이 고조됐다. 그러나 그 현상은 특정 장르와 지역에 국한된 제한적 유행에 불과했다.

 

2025년 현재 한류는 전혀 다른 위상에 서 있다. K-팝, 드라마, 영화, 뷰티, 음식, IT, 한국어를 넘어 웹툰, 게임, 애니메이션, 패션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문화 생태계로 성장했다.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자산으로 부상한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류 진화의 상징적 사례다. 단순히 한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넘어 K-팝과 한국적 세계관, 현지 청년 세대의 호기심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서울 출신의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감각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한류가 특정 장르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 브랜드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글로벌 플랫폼의 파급력은 전통적 문화외교나 정부 홍보를 훌쩍 넘어섰고, 팬덤과 커뮤니티의 결합은 한국 문화에 대한 자발적 학습과 소비로 이어졌다. 이는 곧 ‘한국을 이야기로 소비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세계인이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함께 향유하고, 한국을 방문하며 상품을 적극 소비하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를 국가적 자산과 글로벌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냉정한 분석과 체계적 전략이 필요하다. 한류가 일시적 붐을 넘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되기 위해 다음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민간 창작 생태계의 활성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실험과 실패를 허용하는 창작 환경 덕분이었다. 최근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적 경험을 소재로 한 문학이 세계 독자의 보편적 감수성을 울렸다는 사실은 한류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중소·독립 창작자의 해외 진출을 위한 투자와 배급망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창작물이 세계로 뻗어나갈 때 한류의 지속적 동력이 확보된다.

 

둘째, 한류 글로벌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K-팝,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등은 단순 수출 품목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를 형성하는 전략 자산이다. 정부는 관련 부처 역할을 분담하고, 현지 제도 장벽 해소, 저작권 보호, 플랫폼 인프라 구축에 협력해야 한다. 안정적 예산과 전문 인력을 투입해 장기적 통합 전략을 마련할 때, 한류의 지속 가능성과 글로벌 영향력이 확보될 수 있다.

 

셋째, 첨단 산업과의 융합이다. 한류는 단순 콘텐츠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반도체, AI, 메타버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기술과 결합할 때 새로운 성장 동력이 창출된다. K-팝과 AI 기반 팬 경험, 게임과 VR 기술의 결합은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제공한다. ‘한류=첨단산업’이라는 인식을 확립하고, 연구개발 투자와 인프라 구축, 산업-문화 연계 정책을 병행할 때, 한류는 단순한 문화 수출을 넘어 국가 전략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넷째, 학계와 교육기관의 뒷받침이다.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축적된 문화 자산과 인재의 산물이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K-컬처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해 세계적 담론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한류 교육 프로그램 확대, 한류 전공 학과와 대학원 설립 등을 통해 해외 청년들이 한국 유학을 선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재외동포 사회와의 협력이다. 전 세계 동포 사회는 한류 확산의 중요한 전초기지다. 재외공관, 한인회, 문화원, 한글학교, 세종학당 등이 현지에서 공연과 축제를 열고 있다. 정부가 풀뿌리 활동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면 동포 사회는 한국과 현지를 잇는 글로벌 ‘한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특히 2세, 3세 동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섯째,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지금까지 한류가 대중문화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태극기·한복·한지·판소리·종묘제례악·훈민정음·독도 등 한국의 100대 문화상징(2006)을 현대 기술과 접목해 전 세계에 자연스럽게 알려야 한다. 대중문화의 유행성과 전통문화의 지속성이 결합할 때 비로소 한류는 견고한 기반을 갖춘다.

 

이러한 전략을 실현하려면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으로 추진 중인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기존 위원회 조직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법적 구속력과 독립성, 전문성, 책임성을 확보해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며,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민간의 창의적 역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전략 본부가 돼야 한다.

 

지금 세계의 이목은 한국과 한국 문화에 쏠려 있다. 문제는 이 관심을 순간적인 흥밋거리로 소모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 세대의 글로벌 경쟁력과 이미지를 높이는 동력으로 전환할 것인지다. 최근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류는 전통문화와 첨단산업이 융합될 때에야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나아가 인류 보편의 ‘세계인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때,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도 함께 도약할 것이다.

김봉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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