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 돈화문로, 웅장한 풍경이 가득한 임금의 길

2025.09.29 06:00:00 13면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에는 출입문이 셋이다. 임금이 가마를 타고 드나드는 가운데의 큰 문과, 고관대작을 비롯하여 창덕궁에 볼 일 있는 사람들의 출입문인 양쪽의 작은 문 2개다. 임금이 창덕궁 밖으로 행차하는 일은 드물기에 가운데의 큰 문은 보통 굳게 닫혀 있다. 그러니 돈화문 큰 문틀 속의 풍경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는 ‘죽은 풍경’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신비로운 역사 풍경이라 해도 일상적으로 볼 수 없으면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화문 앞쪽 진입로 끝의 계단 아래 양 옆에 서서 바라보면 양쪽의 작은 문틀 속에도 북한산 보현봉의 웅장하고 거대한 화강암 정상이 쏙 담겨 있다. 가운데의 큰 문틀보다 작기는 하지만 그 또한 엄청 아름답고 신비롭다. 게다가 보통은 가운데의 큰 문이 잠겨 있어 작은 문틀 속의 풍경은 더욱 빛났고, 그 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은 그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무성한 나무가 보현봉을 많이 가리니 아쉽다. 아무리 아까워도 옮겨심기를 바란다.

 

하늘 아래 우뚝한 북한산의 보현봉은 하늘의 명을 받아 조선을 다스리는 임금을 상징하고, 그래서 돈화문 문틀 속의 풍경은 임금의 풍경이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이제 진짜 출발이다. 창덕궁삼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800m의 돈화문로가 직선으로 쭉 뻗어 있다. 편하게 남쪽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서북북을 등지고 동남남을 향했는데, 이 방향은 창덕궁을 만든 조선의 세 번째 임금 태종(재위: 1400~1418)이 철저하게 계산하여 정한 것이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돈화문로를 걸으며 눈으로 확인해 보자.

 

돈화문 모습만 사진에 담고자 한다면 창덕궁삼거리 건너편 첫 번째의 횡단보도 위가 최고다. 그곳에 서서 바라본 돈화문은 중국 자금성의 천안문과 오문-전문-태화문과 비교하여 규모가 많이 작다. 하지만 그렇다고 왜소해 보이진 않는다.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단아하지만 상하좌우로 균형미가 잘 잡혀 있어서다. 돈화문은 중국 자금성의 여러 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우리 궁궐 정문만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다시 돈화문로를 따라 걷다가 두 번째 횡단보도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차가 오지 않을 때 중간에 서서 북쪽을 바라본다. 당연히 돈화문이 그곳에 있는데, 뭔가 모습이 확 달라진다. 돈화문 안에 그림처럼 담겨 있던 그 작은 보현봉이 뒤쪽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돈화문 위에 듬직하고 웅장하게 솟아 있다. 하늘-산-궁궐(정문)의 세 요소가 일체화된 3단계 풍경으로,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궁궐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궁궐 풍경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의 궁궐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하늘-궁궐의 2단계 풍경밖에 없다.

 

놀람을 뒤로하고 돈화문로를 걸으며 횡단보도가 나올 때마다 중간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보현봉이 예상치 못한 속도로 커진다. 진입로의 입구인 종로3가사거리의 횡단보도에서는 보현봉의 웅장함이 극에 달한다. 북경의 자금성을 포함하여 세계 어느 궁궐에서도 정면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이보다 더 웅장할 수 없다. 이 풍경을 본 자, 우리 궁궐의 풍경을 누가 소박하고 단아하다 말하겠는가? 보지 못한 자만이 그렇게 우길 뿐이다. 돈화문로는 임금의 권위를 웅장한 풍경으로 구현한 임금의 길이다.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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