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철강업계가 잇단 무역 장벽에 직면했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수입 철강에 대한 무관세 쿼터를 대폭 줄이고, 초과 물량에는 최고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10월 7일(현지 시간),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대체할 새로운 저율관세할당(TRQ) 제도 도입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초안에 따르면 EU의 철강 수입 허용량은 현재 연간 3053만t에서 약 47% 축소된 1830만t으로 줄어든다.
TRQ 제도가 시행되면, 이 쿼터를 초과해 수입되는 물량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현행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된다. 또 ‘조강국(철강 원재료 생산국)’ 기준이 새로 적용돼, 모든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해 생산국 증빙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이 조치는 내년 6월 기존 세이프가드 만료 시점에 맞춰 EU 회원국 투표를 거쳐 시행될 전망이다.
산업부는 “아직 국가별 쿼터 배분이 확정되지 않아 구체적인 영향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전체 수입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만큼 한국의 대(對)EU 철강 수출에도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EU 철강 수출 규모(MTI 61 기준)는 44억 8000만 달러(약 6조 3000억 원)로, 단일 시장 기준 미국(43억 5000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사실상 미국·EU가 전체 수출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미국도 이미 관세 장벽을 높였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적용하던 무관세 쿼터(연 263만t) 제도를 폐지하고,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상향했다. 여기에 EU까지 비슷한 조치를 예고하면서, 포항·광양·당진 등 주요 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국내 철강업계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실제 한국의 철강 수출은 지난 5월부터 하락세가 뚜렷하다. 미국발 ‘관세 폭탄’이 본격화된 이후 수출량은 전년 동월 대비 5월 -12.4%, 6월 -8.2%, 7월 -3.0%, 8월 -15.4%로 계속 줄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EU가 조강국 기준까지 강화하면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 사실상 ‘철강 보호주의’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