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집값 좌우’…아파트 시장, 대형사 독주 가속”

2025.11.06 14:35:32 5면

10대 건설사 청약점유율 60%·정비사업 수주 31조
중견사 수주액 1조 미만…법정관리 건설사 잇따라

 

국내 아파트 시장이 빠르게 ‘빅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에는 입지·가격·평면이 집값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지만, 최근에는 브랜드가 분양 성적과 시세 형성, 금융 조달, 재건축 추진 여부까지 좌우하는 절대적 변수로 자리 잡았다.

 

래미안(삼성물산)·자이(GS건설)·힐스테이트(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 중심의 쏠림 현상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넘어 일반 분양시장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반면 중견 건설사들은 수주 급감과 자금난 속에서 생존을 위한 ‘틈새시장’ 전략에 몰리고 있다.

 

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서 입주했거나 연내 입주 예정인 모든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10대 건설사가 시공을 맡았다. 중견 또는 중소 건설사가 이름을 올린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에서는 브랜드가 곧 분양 성공률”이라며 “조합원들도 사업 안정성과 시세 방어를 이유로 대형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에서도 이 같은 ‘브랜드 효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10대 건설사가 분양한 아파트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은 11.78대 1로, 기타 건설사 단지(5.98대 1)의 두 배 수준이었다. 전체 평균(8.49대 1)보다도 높다.

 

1순위 청약자 수도 대형사에 몰렸다. 10대 건설사 단지에 접수된 1순위 청약자는 15만 474명으로, 전국 전체(25만 395명)의 약 60%를 차지했다. 청약자 10명 중 6명이 대형 건설사 브랜드를 선택한 셈이다.

 

도시정비 수주 실적에서도 대형사의 독주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1~9월 기준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 수주액은 총 37조 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삼성물산, 현대건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사실상 ‘2강 구도’를 굳혔다.

 

반면 중견 건설사들의 성적은 초라하다. 수도권 정비사업에서 꾸준히 현장을 확보해온 한신공영은 올해 4곳, 약 4815억 원 규모의 수주에 그쳤다. KCC건설은 약 7000억 원, 두산건설은 9000억 원 수준이다. 대형사들이 ‘수십조 원 단위’로 실적을 쌓는 상황과는 비교 자체가 어렵다.

 

이에 중견사들은 대형사가 관심을 두지 않는 1만㎡ 미만의 소규모 정비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남광토건, 동부건설, 진흥기업, 자이에스앤디 등이 가로주택정비사업, 모아타운, 소규모 재건축 등을 중심으로 서울·수도권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안전 규제 강화, 조합원 권리양도 금지, 토지거래허가제 등 각종 규제가 겹치며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대형사는 브랜드 파워로 이를 상쇄하지만, 우리 같은 중견사는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중소·중견사의 숨통을 트기 위해 가로주택 정비사업 구역 요건 완화, 용적률 상향, 인허가 간소화 등의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업계는 “시장 구조 자체가 대형사 중심으로 고착화됐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도 중견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만 해도 대우조선해양건설, 신동아건설, 대저건설 등이 잇달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장 수주가 줄면 자금 흐름이 막히고, 이는 다시 신규 수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브랜드 쏠림이 지속될 경우 주택 공급 구조가 왜곡되고, 가격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브랜드가 집값을 결정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결국 몇몇 대형사가 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며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고, 지역 간·단지 간 가격 격차도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브랜드 쏠림을 완화할 제도적 장치와 중견사 지원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며 “시장 경쟁력을 지키려면 다양한 건설사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오다경 기자 omotaa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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