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섭의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산성(離散性) 활용 전략

2025.11.21 14:21:51 13면

 

냉혹한 국제 현실과 과제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여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며,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등 G7은 물론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같은 인구 대국까지 국제 질서 재편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선도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게 이는 동시에 중대한 기회이자 위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으로 재출발한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민주화·정보화·세계화를 압축적으로 달성하며 ‘한강의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09년에는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OECD DAC 가입)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2021년에는 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K-음악·영화·드라마·음식·미용·IT·한국어 등으로 대표되는 K-컬처는 ‘15세기 세종, 18세기 영조·정조 시대 이후 최대의 문예부흥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정세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자국 우선주의의 확대로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이는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가 강력한 국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도, 단기 처방도 아닌 국가 역량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는 중장기 전략이다.

 

국력의 새 기준, 이산성(Diaspora)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우리는 국민·동포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산성(離散性)’을 국력 측정의 새로운 척도로 삼아야 한다.

 

첫째,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의 전략적 활용: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전 세계 2억8천만 명이 출생국 밖에서 살며, 이들의 송금액은 2022년 기준 8,31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이스라엘은 물론 인도·아일랜드·멕시코·튀르키예·베트남 등도 해외 네트워크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한국 역시 글로벌 이산 네트워크를 ‘부수적 자산’이 아닌 ‘핵심 국가 역량’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둘째, 국력의 총체적 역량 확장: 국력은 인구·영토·경제력·군사력·외교력 같은 하드파워뿐 아니라 가치·국민 사기·국정 목표의 정당성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포괄한다. AI·빅데이터·글로벌 초연결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시대일수록 국민·동포의 이산성은 국가 외연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투사하는 결정적 자산이다.

 

셋째, ‘섬 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국가 공동체: 초저출산·고령화·인구절벽의 경고등이 켜진 대한민국은 더 이상 영토·국적·혈연·이념의 울타리에 갇힌 ‘섬 국가’일 수 없다. 남과 북, 700만 재외동포, 국내 300만 외국인을 포괄하는 ‘열린 국가 공동체’ 구축이 필요하다. 이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할 때 대한민국은 글로벌 혁신·통합국가로 도약할 수 있으며, 국력의 확장 가능성 역시 G3 수준까지 열려 있다.

 

넷째, 질적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지향적 정책 설계: 708만 재외동포 중 외국국적동포가 65%이며, 이 중 다수는 1.5세·2세 이하 세대다. 이들에게는 상징적 지원이나 수사적 응원으로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다. 이들을 미래 국가 인재자산으로 확보할 체계적·현실적 정책이 시급하다.

 

다섯째, ‘뿌리의식과 세계시민성’의 동시 강화: 재외동포는 한국적 정서를 지닌 ‘글로벌 코리안’이자 현지에서 살아가야 하는 ‘세계시민’이다. 국익과 실용을 중시하는 정부라면 이민·다문화 정책과 재외동포 정책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들의 경제력·정치력·정보력과 현지 전문성·신뢰도를 국력 증진의 전략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섬세하고 정교한 정책 개발이 요구된다.

 

여섯째, 재외동포 데이터의 고도화: 조만간 발표될 '2025 재외동포 현황'은 국력 재평가의 핵심 자료가 되어야 한다. 단순 인구 집계를 넘어 국가별·세대별·체류 자격별 역량과 현안을 계량화하고, 이를 재외국민 보호와 재외동포 지원 제도 개선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빅 데이터 기반 정책체계가 강화될 때 비로소 국력의 실질적 확장이 가능하다.

 

일곱째, 이산 네트워크를 이끄는 리더십: 경쟁국들은 해외 인적자산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지 않는다. 높은 교육열, 근면성, 강한 뿌리의식을 겸비한 재외동포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력의 숨은 원천이었다. 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소속감·유대감·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리더십만이 초저출산·AI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생존과 도약을 보장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대한민국은 지금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국력 신장의 새로운 동력이 절실하며, 그 중심에 재외동포가 있다. 재외동포는 대한민국의 ‘바깥’이 아니라 국력의 확장된 범위, 즉 국가 외연이자 ‘또 하나의 집(Home)’이다. 이제는 영토·국적·혈연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전 세계에 뻗어 있는 국민·동포의 이산성을 국력 신장의 촉매제로 삼아야 한다.

 

민·관·산·학이 서로 힘을 합쳐 우리 재외동포정책의 패러다임을 고도화하고 지원체계를 정밀하고 유연하게 재설계할 때, 대한민국은 세계평화·인류 번영에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국가 공동체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봉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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