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당신의 연인이 이젠 그만, 이라고 말할 때

2026.03.16 13:44:52 16면

다이 마이 러브 – 린 램지 감독

 

 

제니퍼 로렌스가 16일(한국시간) 끝난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올해의 가장 큰 이변으로 꼽혔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녀의 연기가 거의 최고급이었기 때문이다. 제니퍼 로렌스는 지금까지의 연기 인생에서 거의 정점을 찍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혼이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광적으로 연기해 냈지만, 그 생생함이 투표권을 지닌 일부 아카데미 회원들에게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모습으로 비춰 불편함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니퍼 로렌스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자체가 다소 난해하고 요령부득의 내용인 탓에 대중성을 선호하는 아카데미와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케빈에 대하여'(2011)로 한국에 많이 알려진 감독 린 램지의 이번 신작 '다이 마이 러브'는 일반 영화와는 다른 화면 비율(1.33:1, 흔히들 4:3 화면이라 한다)로 시종일관 시선을 박스권 안에 가둬두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화면 비율은 영화 역사 초기에 쓰인 것으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현대영화는 대체로 비스타 비전(1.85:1)으로 찍는다. 가로 화면이 길다. 가로 화면을 조금 더 극단으로 늘린 것이 시네마스코프이다. 거의 3:1(2.39:1)의 비율에 가깝다. '다이 마이 러브'의 화면 비율은 최근 개봉된 영화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여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감독한 영화 '물의 연대기'도 4:3 비율이었다. 이런 화면은 뭔가에 갇혀 있는 억눌린 심리 상태를 표현해내는데 적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립감과 복잡한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데도 가장 알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린 램지가 왜 이런 화면 비율을 선택했는지, 그렇다면 영화 '다이 마이 러브'가 어떤 내용의 작품일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게다가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몬태나임에도 불구하고(주인공 그레이스의 남편 잭슨은 삼촌의 몬태나 집을 물려받은 것으로 나온다) 광활한 자연을 보여줄 수 있는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쓰지 않은 것은, 이 영화가 다분히 심리물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오프닝 씬은 두 남녀가 집 뒤에 차를 주차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카메라는 집 안에서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고정된 채 오랫동안 롱테이크로 관찰한다. 영화는 두 남녀가 곧 이 정사각형의 폐쇄된 프레임 안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레이스(제니퍼 로렌스)는 대도시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작가인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사랑하는 남편 잭슨(로버트 패틴슨)과 그의 죽은 삼촌의 집에 살기 위해 몬태나로 왔고, 곧 임신했으며, 출산 후 육아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레이스의 우울증은 단순한 산후우울증이 아니다. 산후우울증은 그녀의 시어머니 팸(씨씨 스페이식)의 말대로 1년쯤 지나면 극복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산책도 하고 요가도 하고, 다른 일에 집중하다 보면 나아질 수 있다고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레이스의 우울증은 그보다 심연이 훨씬 깊은 것이다. 그레이스는 이제 글을 쓰지 못한다. 그녀는 그 같은 경력단절로 인한 고립감과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 생활의 고독함을 어쩌지 못한다. 정서적 연대를 해 나갈 수 있는 상대는 오로지 남편인 잭슨뿐이지만 남자는 여자의 깊은 내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다른 남자들처럼 잭슨 역시 자신은 돈을 벌어 와야 하며 여자는 애를 키우고 집안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레이스가 원하는 것은 다시 작가가 되는 것이라거나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내부가 부서지고 있는 소리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 방법을 그녀는 섹스에 대한 요구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잭슨은 일상에 지쳐 아내의 그런 요구를 번번이 피하기 일쑤다. 그레이스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고 풀장에 뛰어드는 등 이상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녀는 사물을 부수고 자기 몸을 학대하고 다치게 하는 등 점점 미쳐간다. 문제는 자신이 미쳐간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레이스처럼 자아의 벽이 두꺼운 인물은 정신 상담이든 약물 치료든 잘 통하지 않는다. 그레이스의 정신 상태는 점점 더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제목을 직역하면 ‘죽어버려 내 사랑’쯤이 된다. 이 영화는 우울증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상대가 (이제는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식의, 사랑 자체가 부정되는, ‘사랑의 죽음과 끝’에 대한 영화이다. 남자와 여자 혹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사랑은 창대했던 시작과 달리 종국에는 상대를 지켜주지 못한다. 사랑의 관계는 어느 시점부터 형식적이고 일상적인 틀에 매이게 되고 상대가 어떤 심적 고통을 겪는지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 하는 관계가 된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를 보고 있으면 나의 여자, 혹은 나의 남자가 저렇게 광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 과연 나 자신은 어떻게 하게 될까를 반추하게 된다. 사랑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이다. 수사학적으로야 상대를 사랑으로 끝까지 돌볼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같은 사랑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괴하고 끔찍한 면이 있다. 혹은 그 반대로 대단한 감각을 선보인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아르헨티나 작가 아리아나 하르비츠의 스페인어 소설 '마타테, 아모르'(Matate, amor)를 원작으로 했다. 역시 같은 뜻이다. 소설은 그레이스의 의식을 일종의 컷 업 기법(비선형적 서술방식)으로 기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린 램지 감독은 이를 그레이스와 잭슨의 상호 관계로 구체화 시켜 각색했다. 원작 그대로 했든, 그것을 각색으로 바꿔냈든 그레이스를 표현해내는 데는 완벽한 빙의, 곧 철저한 캐릭터라이징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변 사물을 때려 부수고 이마를 짓이기고 창문에 뛰어들고 등등의 폭력적인 연기는 누구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라를 드러내고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거나 바닥을 기어 다니는 연기도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4:3이라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안에서 클로즈업으로 얼굴을 드러낸 채 자신의 내부에서 태풍이 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정 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스 역의 제니퍼 로렌스는 보는 사람들이 치를 떨게 할 만큼 극단의 우울증 연기를 유감없이 해낸다. 스스로가 우울증에 대한 경험이 치열했거나 아니면 이 역할을 위해 의도적으로 우울증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거나 했을 것이다. 배우가 영화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면 그건 이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제니퍼 로렌스를 두고 하는 말이 될 것이다.
 

 

영화가 심리스릴러에 가깝고 난해한데다, 산후우울증의 극단적 증세를 보통의 남성 관객이라면 체화해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은 면이 있어서인지 일반관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이 마이 러브'는 유명한 감독과 개성 있는 스타급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그래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어려운 영화이다. 2400만 달러짜리 영화지만 북미에서는 550만 달러의 흥행수익에 그친 이유이다. 국내 관객 동원도 부진한 편이다. 아마도 산후우울증 증세를 다소 공격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그런 모습에 대해 일정한 해석을 유보한 채 관객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게 하는 린 램지의 연출방식이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쉽지 않았던 요소로 보인다. 한 마디로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는 얘기이다. 관객들에게 그레이스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과 거리두기의 대상이 됐다. 그레이스의 마지막 대사는 '이젠 그만 (Enough)'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영화 대사 중 가장 서늘한 것이다. 영화를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지난 3월 4일 전국 개봉했으며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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