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밖을 본다. 봄이다. 자꾸만 발밑을 보게 되는 계절, 겨우내 잠들어 있던 것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철근 같았던 나뭇가지에 잎이 돋아나고 있다. 그 모습이 연둣빛 이파리를 가득 물고 있는 어린 새들 같다. 가까이에서 새가 지저귄다. 먼지와 구름을 걷어내는 색과 소리가 날마다 조금씩 번지고 있다. 어디선가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에 피었던 꽃이 잊지 않고 찾아왔다. 봄이니까, 올 게 왔다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이 이제는 그저 고맙다. 얼었다가 녹았다 추위 속에서 얼마나 떨었을까, 사라지지 않고 살아내는 생명들이 애틋하고 그래서 더 절절한 봄이다. 이제 곧 개나리, 진달래가 줄지어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산벚꽃이 뒤를 쫓아 산은 꽃으로 출렁일 것이다. 꽃의 공습이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고 꽃소식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걱정이 앞선다. 올해는 제발 산불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꽃과 나무에 색이 드는 봄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산불이 났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타들어 가는 나무와 둥지를 떠나지 못한 작은 새들, 숲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들이 스러지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어리고 여린 것들의 비명조차 불의 포효 속에 갇히는 슬픈 일이 없기를 바란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숲. 공중에 뜬 헬기는 전시 상황처럼 긴박하다. 그을리고 재가 된 숲에서 몇 날이고 연기가 피어오르던 장면은 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산불은 생명과 자연에 대한 폭격이다.
봄이면 무수히 사라져간 아름다운 생명들을 떠올리다가, 다시 인간이 만든 불 앞에서 스러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곳에도 꽃은 피었을까, 누구라도 핀 꽃을 본 이가 있을까. 인간에게 처음 불이 생겼을 때 그것은 우리를 한곳으로 불러 모으는 힘이었다. 어둠을 밀어내고, 그 앞에서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불이 꺼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이 불이 우리가 두 손 모아 꺼지지 않게 지켜온 불인가, 우리를 살려 온 불은 지금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가만가만 겨우내 잠든 것들을 흔들어댄다. 하나, 둘 깨어나 가지마다 잎을 틔우고 땅속의 싹을 밀어 올린다. 날마다 초록이 번지고 분홍과 빨강이 번져간다. 그러나 바람에 번져가는 것은 꽃만이 아니다. 불, 화염이다.
꽃과 불을 번지게 한 힘으로, 어둠을 밝혔던 빛으로, 이리저리 날뛰는 불길을 바람이 쓸어가 버렸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아깝고 귀한 것이 있다면 살아있는 생명 말고 무엇이 있을까. 창밖에 빛이 더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다. 물오른 나뭇가지에 초록이 짙어지면 이파리는 바람의 리듬에 흔들리다 곧 날개를 펴고 어린 새처럼 파닥이며 소리를 낼 것이다. 봄은 발밑을 보게 되는 계절이다. 그곳에는 눈부신 생명들이 움트고 있으니 말이다.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면 미처 헤아리지 못한 봄의 얼굴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살아갈 힘을 내는 같은 운명을 지녔다. 그러니 서로를 아까워했으면 좋겠다.
꽃이 꽃으로 피어나는 봄, 아무것도 부서지지 않는 계절을 꿈꾼다. 볕에 따뜻해진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내일은 어떤 꽃이 피어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