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의 SNS 발언이 언론을 거치지 않고 대중에게 곧바로 닿는 현실은 기자의 보도 관행과 언론사의 정파적 시선을 무력화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로 여겨졌던 언론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은 이제 정보를 걸러주는 장치가 아니라, 보고 싶은 사실만 가공해 권력의 입맛에 맞는 프레임으로 포장하는 장벽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엑스(X·옛 트위터) 게시물을 두고 벌어진 언론의 보도 경쟁은 그 붕괴의 단면을 보여줬다.
지난 10일 이 대통령은 국제 인권 침해 논란이 된 이스라엘군의 영상 한 편을 엑스에 공유하며 전쟁의 야만성을 비판했다.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이 발언은 정치적 계산을 넘어 국제사회의 규범적 메시지였다. 그러나 국내 주요 보수 매체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이스라엘군 아동 고문 주장 영상 공유한 이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냈다. 사설에서는 ‘2년 전 팔레스타인과의 교전 중 살해 영상’임을 부각하며 대통령의 경솔함을 꾸짖었다. 하지만 여기서 언론의 시선은 ‘영상의 연도’에 머물렀을 뿐, 그 안의 인권 침해라는 본질을 외면했다.
뒤늦게 월요일에 보도한 한국일보도 비슷했다. 이 신문은 “이스라엘 한인회장, 李 대통령 저격…‘현지 한인들 참 힘들게 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후속 기사를 냈다. 취재원의 페이스북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반나절 동안 7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대부분 기사와 취재원의 편향성을 질타했다. 언론의 의제설정 영향력이 더 이상 독자에게 통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자국 내 미군 기지를 이란 침공용으로 미국에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세계 시민들은 이를 환호했고, 이탈리아의 극우 총리 조르자 멜로니조차 미국의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선을 그었을 때 국제사회는 이를 주권적 결단으로 칭송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자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군사 행위에 대해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비판하자 곧바로 국익 손상으로 몰았다.
언론의 본질적 사명은 국가 우선주의가 아니라 진실 추구에 있다. 맹목적 쇼비니즘 위험이 높아지는 오늘날엔 더 경계해야 한다. 전쟁과 외교,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언론은 결국 진실의 적이 된다. SNS 시대의 시민은 더 이상 언론의 편집된 해석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원문을 읽고, 직접 해석하며, 언론의 해설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한다. 뉴스 수용자의 기사 감식 능력은 급신장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언론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권위적 필터링을 포기하고, 맥락과 진정성으로 무장한 설명적 저널리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교황 레오 14세는 소셜미디어 엑스에 “하나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단호한 선언이야말로 오늘의 언론이 되새겨야 할 윤리적 나침반이다. 언론이 특정 진영의 확증편향에 갇혀 진실의 방향을 잃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회적 제도라 부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국익 서사에서 벗어나, 인류의 보편적 정의에 대한 목소리를 잃지 않는 용기 있는 미디어다. 언론 영향력의 원천은 게이트키핑이다. 지킬 문이 사라지고 있는 원인이 언론 스스로에게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