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굳이 영화와 TV에 이어 ‘제9의 미술’이라 불리는 문예적 명칭의 권위를 빌리지 않더라도 만화는 엄연히 존재하는 문화이고 또한 중요한 예술 장르다. 만화는 20세기 최후의 종합예술이자 21세기 멀티미디어형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장르로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만화는 표현 불가능한 것이 없을 정도로 무소불능의 탁월한 시각적 서사형식인데, 이 탁월성은 무엇보다도 그림과 말의 결합 형식과 이를 이용한 연속된 이야기의 창조에서 오는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만화가의 한사람으로서, 만화 ‘쥐’로 풀리처상까지 받은 미국의 만화가 아트 슈퍼겔만은 “만화는 연극보다 유연하고 영화보다 심오하다”고 했는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잘 음미해 봐야 한다. 물론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화의 재미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것이 아니다. 만화의 재미란 곧 이야기꾼의 이야기 솜씨가 주는 재미있고 그림의 개성적 깊이가 주는 감동이다. 곧 문예적 힘인 것이다. 이제는 이런 점을 의식하고 만화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숙한’ 독자상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 가야 한다.”
만화를 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만화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만화는 재미를 통해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훌륭함’이란 게 있다. 나는 그것이 훌륭함의 세계에 속한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면서 “그리고 나는 (만화)사랑에 빠졌다. 미칠 것 같은 뜨거운 사랑이라기보다는 느긋하고 게으르고 몰래 즐기는 특권 같은 비밀스런 사랑이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만화를 처음 본 순간에 대해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을 했다.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그 생생함을 전했다.
“대학원 시절 프랑스문화원에서 불어권 만화를 처음 발견한 샘인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그 비밀스런 사랑과의 접촉을 끊어지지 않게 만든 것이 ‘탁월성’이다. 유럽과 미국, 남미의 만화에 대해 내가 가진 감정의 으뜸은 우선 훌륭함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다. 유럽과 북남미의 뛰어난 ‘체재만화’들은 내가 믿는 예술이란 동네의 최고의 덕성, 곧 확실한 개성, 실력, 전위성, 기질 등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세계 만화를 접할 수 없는 우리 만화 문화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세계 만화는 아직도 우리 문화의 지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물가물한 저 수평선 너머에 어떤 섬, 어떤 땅덩어리, 어떤 보물이 있는지 그 소문조차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오직 가까운 섬나라의 만화만 작은 구멍가게에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우리 만화문화는 우리의 국제성 제로, 시계 제로의 편협하고 무지한 정치, 언론, 대학의 모습과 빼다박은 듯이 꼭 닮았다. 2003년에야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한국만화 특별전에 초청됐을 정도다. 호응이 굉장히 좋았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세계 만화를 한국 만화 시장에 내 놓기 위해 책을 내기도 했다. 아직 우리 문화의 지도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 만화의 보물섬을 찾기 위한 길잡이를 위해서다.
“책은 무엇보다도 이 답답함을 넘어서려는 상식을 가진 사람을 위해 쓰게됐다. 좋은 만화, 좋은 작품을 가려서 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있고 귀가 열린 사람, 건전한 상식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을 위해 쓴 것이다. 만화가, 대학생, 주부, 직장인, 예술가, 문인, 교수 등 직업과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그냥 좋은 것을 본능적으로 식별할 줄 아는 눈을 가진 모든 이들을 위해 썼다. 독자들이 책을 읽은 후에 그 지도 속의 크고 작은 수많은 보물섬들의 존재와 그것들의 가치를 알고 독자들이 충족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만화를 보는 인식이 곱지 않다. 성 교수는 만화 발전을 위해서는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했다.
“만화에 대한 사회 인식, 불균등성이 장애를 초례 한다. 이러한 사회 인식은 일본 만화의 소비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시스템 그대로 만화를 들여왔기 때문이다. 상업성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만화를 들여왔다. 한국의 시스템이 바로 문제다. 만화방에 책을 공급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서점에 꽂쳐야 할 만화책이 만화방에 꽂쳐있다. 하지만 현재 만화방은 하향 사업에 빠졌다. 만화의 고유한 특성을 인식해야 한다. 만화를 불량식품 취급하고 있다. 아직도 인식은 마이너다. 이러한 인식 변화가 만화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학습 만화는 매우 발달 돼 있다. 만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인식 변화와 함께 국가적 사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뜻도 비췄다.
“만화는 중요한 사업이어야 한다. 국가적,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올해가 한국 만화 탄생 100주년이다. 1909년 처음 만화다 도입됐다. 100주년 행사를 계기로 만화에 대한 인식을 해 주길 바란다. 만화 창작 지원시스템과 교육 등도 개선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제적 만화 교류가 매우 필요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만화의 잠재력을 알아주길 바란다.”
만화하면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에 대해 “10년 전 만화 관련 학과들이 속속히 등장했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 직업인으로서 활동하려면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하지만 나무를 보기보다는 숲을 보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만화를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만화, 캐릭터 사업 등이 좋은 예”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만화 발전이 저급 문화가 아닌 고급 문화 발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화는 고급 문화로 발전 되야 한다.. 한국도 빨리 새로운 ‘독자성’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