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과 미술 평론 그리고 학회 등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평론가 장준석 씨를 만나기 위해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난 30일 오후에 용인으로 향했다.
용인은 산수가 수려하고 서울에서 30㎞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깃들어있는 지역이다. 장준석 선생은 용인에 대해 많은 애착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문화와 미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는 서울, 수원 등을 오가며 한국 미술 문화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특히 부드럽고 자연스런 이미지에 걸맞게 문화와 미술의 발전이라는 외길을 걷고 있는 장 평론가는 최근 들어 더욱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전통 한국미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극대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단순한 국수주의가 아닌, 세계의 미술과 인종을 어울러 모든 사람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휴머니즘을 실현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그는 먼저 문화를 발전시켜야만 세계 속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가적인 열정이 생깁니다.”
그는 창고에서 묵혀지고 있는 한국의 불교 미술을 끄집어내어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켜 세계적인 미술로 정립시킬 수 있다는 논지의 글로 주목 받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우리 미술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세계의 미술을 발전시키려는 일념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장준석 평론가는 만날수록 소박한 성격과 인품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갖게 하며 맑은 미소 또한 매력적이다.
사춘기 무렵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많은 고전을 읽고 시를 창작하면서 문학과 그림뿐만 아니라 철학과 한문 등에도 관심을 가져왔는데, 지금도 여전히 간단한 그림을 그리며 시를 쓰고 사색에 잠기는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또 바쁜 와중에도 넉넉한 인심과 여유와 덤 등이 자연스럽고도 은근하게 스며있는 재래시장을 즐겨 찾으며, 중요한 글 작업을 할 때면 편안한 보금자리인 쾌의당(快意堂)을 찾고 있다.
장준석 평론가는 “이곳은 고향을 떠나 객지의 힘든 생활 속에서 처음으로 마련한 공간인데 벌써 십 오년이 흘렀다. 이곳에서 글쓰기에 심취하며 막걸리 한두 잔을 할 때 인간다운 소박함을 느낀다”며 미술문화란 각박해져만 가는 인간 사회에서 정화수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어 그는 “특히 용인은 산명수려(山明水麗)해 세계적인 문화와 미술을 펼칠 수 있는 천혜의 지역이라 생각하고 있다”며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연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장준석 평론가는 국내의 서양미술사들이 서양미술의 지식을 나열하는 것에 대해 실망해 ‘한국인의 시각에서 본 서양미술사’를 지난 2004년 집필했다.
이 책은 홍보를 하거나 강단에서 교재로 쓴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재판을 찍었다. 그는 한국미학사 저술에 관한 포부를 다음과 같이 드러냈다.
“유럽의 프랑스나 독일 등은 자국의 미학사에 해당하는 프랑스미학사니 독일미학사니 하는 책들이 없죠. 그러나 나는 중국에 중국미학사가 존재하는 것처럼 한국미학사를 쓸 겁니다. 프랑스나 독일에는 미학사라는 말이 없지만 많은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이 미학에 관한 심도 있는 저술을 남겼죠. 이처럼 좋은 학자들이 나오기 위한 첫 시발점으로 한국미학사를 쓰고 싶은 거죠.”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는 원래 홍익대에서 미학을 공부한 다음에 미국으로 가서 실기를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술 이론과 평론이 너무 체계적이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인식해 미국 유학을 포기했으며, 대학원 논문학기에는 서양 논문을 쓰지 않고 다시 중국어와 한문 등을 공부하여 동양과 관련된 논문을 썼다.
이것은 그가 한국 미술의 정통성과 한국성을 고민한 때문이며, 한국의 미학사를 쓰고자 하는 그의 꿈과도 결부되어 있다.
그가 가진 꿈은 각박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애정 어린 휴머니즘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 시각에도 문화와 미술에 대해 고심하며, 우리들이 사는 이 땅에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정신과 마음이 한데 모여 흐르기를 염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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