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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더] ‘전통연 전도사 ’성용부 선생

풀 먹인 연실에 고운 꿈 싣고

 

“‘방패연’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사용을 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유 연은 ‘지연’, ‘풍연’이라고 부르지요.”

연날리기는 세계 각국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특히 동양 3국에서 성행하고 있어 나라마다 명칭도 다양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월대보름이면 소원을 써서 새해 가정의 행복과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물리치는 지신밟기와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한해를 맞이하는데 있어 빠질수 없는 놀이가 ‘연’이다.

부천전통공예체험관에서 전통연 만들기를 전수하고 있으며 국내 각종 축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전통연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전통연 기능보유자 해운 성용부 선생(73)을 만났다.

해운 선생의 작업실 안에는 중국, 일본, 미국 등 국적을 알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연과 해운 선생이 직접 만들어 놓은 연이 천장에 한 곳도 빠짐없이 배치돼 있었다.

또 지난 1일부터 16일간은 오정구청 사랑갤러리에서 쌀봉지를 가지고 연을 제작, 전시회를 갖기도 했었다.

‘연’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해운 성용부 선생의 연날리기는 언제부터 시작이 됐을까.

“다섯 살 때부터 연을 많이 좋아했죠. 당시 6.25가 일어나기 전이었는데 어른들이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혼자 연을 날리기 시작했어요. 한국전쟁 때 섬에 있는 외갓집으로 피난을 갔는데 겨울에 동지팥죽을 먹고 정원대보름 큰 대회 때 150여 가구가 모여 연을 많이 날렸죠. 그때는 집집마다 연을 다 날릴때였죠. 그리고 그것에 감명을 받아 혼자 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을 만들어 장사를 시작했다. 조금씩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고 그가 살던 동네에서는 ‘성용부가 만든 연이 최고’라고 소문이 났다.

“그 당시 내 나이가 어렸고 연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모두들 내 연만 사가지고 갔어요. 그만큼 내 연이 다른 연들에 비해 잘 날았기 때문이죠.”

더욱이 그는 연을 만들어서 날리는데에만 그치지 않고 연 싸움에도 소질이 보여 정월대보름에는 동편, 중편, 서편으로 나뉘어서 각 편에서 한 선수가 나와 연줄 끊기 대회를 하기도 했다.

“보름날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잔치가 벌어지는 날이잖아요. 당시 전쟁 때 나온 탄피를 가지고 따먹기 놀이를 하거나 딱지치기, 팽이치기, 제기차기를 하고 놀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어느 곳이든지 연을 만들어 연싸움을 했어요. 그래서 시골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연을 만들어주는 것이 하나의 미덕으로 작용했죠.”

해운 선생은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도 4차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것은 전통연을 만드는 것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글과 그림이 어울어져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해운 선생이 만들어 놓은 연을 감상을 하고 있으면 연을 만드는 것이 아닌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고향인 통영에서 아버님이 수산업에 종사를 하셨는데 손재주가 매우 좋은 분이었다. 내가 그 손재주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버님의 필적도 참 좋으셨는데, 그림과 글도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타고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가 고향인 통영을 떠나 부천까지 오게 된것은 피할 수 없는 경제난 때문.

“어릴 적에 먹을 것도 없이 힘든 시절을 보냈었죠. 그러다 24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구두방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강제 철거를 당해 동생이 있는 부천으로 오게됐습니다.”

그 때부터 해운 선생은 동생집에 살며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다시 아이들에게 연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연날리기 대회 소식에 무작정 그 대회에 나가게 됐다.

하지만 1년에 한번씩 10여년을 그렇게 대회에 나갔지만 이기지도 못하고 바로 짐을 싸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그러다 해운 선생은 연만을 위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1995년도에 수원에서 문화원장배 정월대보름 전국 연날리기 대회에 참가해 연싸움을 해서 장려상을 받은 것을 발단으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평소 운동을 해둔 덕택에 다른사람보다 스텝과 얼레를 감는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빠르고 힘이 있어 많은 대회에서 상을 수상했다.

“연싸움을 할 땐 수학의 내각과 외각 알아야 되며, 과학적으로 연과 지면이 이르는 각도에 따라 힘의 법칙을 이용해야 하며 연싸움은 평형감각과 균형감각이 필요하며 심리적인 요소로 공격과 수비 전환을 잘 해야 이길 수 있어요. 그러다 2000년도쯤이었나, 연을 날리고 있는데 부천공예체험관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지금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고 있지요.”

그가 가르치고 있는 연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케릭터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어느 날은 외손자가 연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서 당시에 유행하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피카추연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죠. 그걸 계기로 공원에서 피카츄연을 날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좋아했고 그 때 ‘사람들이 연을 좀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죠.”

해운 성용부 선생은 최근에 러시아 하바로브스키까지 가서 연을 날리고 왔다. 한국의 대표로 나간다는 생각에 열심히 노력을 했고 대회에 나가 대상을 거뭐지기도 했다.

“태국에서 2년마다 국제대회를 여는데 직접 줄연을 가져가서 참가하기도 했고, 러시아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온 세계에 우리나라 전통연을 날리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해운 성용부 선생은 “한국 전통연이 외국에서는 인기가 많이 있고 관심이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씩 외면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를 봐도 아이들이 연을 만들 수 있게 설명이 나와있지만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연을 만드는 법을 배우지 못해 제대로 된 연을 만들수 있을까요? 좀더 우리나라의 전통을 알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 체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운 성용부 선생은 “지난 10월부터 경기도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특선으로 당선되기도 했고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누구보다 전통연에 있어서는 ‘성용부가 최고’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고 무엇보다도 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고 흥미를 일깨워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약 력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30, 32, 33, 34회 입선 및 특선
경기도 고예품대전 32, 36, 37, 38, 39회 입선 및 장려
원주시 옻칠 공예품대전 5, 7, 8회 입선
한산모시 전국공예품 대전 입선
전국 한지 공예품대전 입선
대한민국 공예품대전(본선) 입선
수원시 관광기념품 공모전 입선
제2회 서울시민연날리기대회 왕자전 연싸움부문 대상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시 승격 147주년 연날리기 대상
제8회 서울시민연날리기 서울특별시장상 대상
전통연 개인전 6회 전시
(현)한국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
(현)부천 공예체험 교육관 전통 연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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