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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금난새

대학교 시절 예고출신 모여 오케스트라 창단
세계청소년음악연맹 참석 해외 첫 진출 기회
베를린 음대 라벤슈타인 교수 지도 음대입학
유라시안필 장소 상관없이 공연 자립화 성공

 


‘새로움·창조·도전’ 나를 끊임없이 발전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시도하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네기홀 같은 유명한 곳에서 연주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나는 청중을 위한 연주를 할 겁니다. 그래서 사회에 필요한 예술인이 되려고 합니다.”

 

“앞으로 경기도 곳곳에서 경기필하모닉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지난 2006년 취임한 금난새(62) 지휘자.

국내 최초로 지휘자가 해설하며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전석 매진을 기록한 ‘청소년 음악회’를 비롯해 ‘마라톤 콘서트’, ‘로비 콘서트’, ‘제야 음악회’를 여는 등 1998년 최초의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필’을 창단,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마에스트로 금난새 지휘자.

이렇듯 그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 등으로 늘 청중과 함께해온 대표적인 스타 지휘자다.

특히 그는 젊은 단원들의 실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부터 여러차례 오디션을 열고 ‘경쟁체제’로 돌입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 금 감독은 앞으로 끊임없는 연습과 많은 연주회를 통해 경기필하모닉의 네임밸류를 올렸다.

그는 연주를 많이 하지 않는다면 상품이 되지 않는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92년 제가 수원에 올 당시 정기연주회를 한달에 한번하던 수원시향이 제가 떠날 당시에는 10차례나 하는 오케스트라로 변모했습니다. 그래서 수원시향이 이름을 알릴 수 있었죠. 경기필하모닉도 하나의 레퍼토리로 한달에 5번씩 여러 곳에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연습횟수도 줄어드는 등 생산력이 빨라질 수가 있기 때문이죠.”

이런 그가 이만큼 성장하게 된 것은 어릴적 환경이 많이 작용했다.

“어릴 적엔 뭔가 참 장난꾸러기였죠. 예를 들어 어른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하면 알겠다라고 말한 뒤 바로 뒤돌아 서서는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 어느 신문에서 존 F.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연설 말머리에 했던 유명한 구절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라는 글을 읽고 ‘아, 뭔가 나도 다르게 생각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치솟았죠.”

어릴 적부터 뭔가 다르게 바라보며 살고자 했던 금난새에게 그 글은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서울예고 작곡과에서 이론 공부를 하다가 서울대 작곡과에 들어갔는데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던 그는 서울예고 출신들을 모아서 오케스트라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청소년음악연맹’ 이라는 행사에 옵서버로 참석,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때 스웨덴에서 연주를 마친 뒤 베를린에 가서 무턱대고 음악 대학을 찾아가 지휘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는지 물었다.

전화번호를 알아낸 즉시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직접 전화를 받은 교수는 내일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그가 바로 베를린 음대 라벤슈타인 교수, 금난새의 첫 은사이자 은인이었다.

라벤슈타인 교수는 금난새 감독이 지휘하고 피아노 치는 것을 보고 “그냥 이곳에 바로 머무르는 게 어떻겠느냐. 너는 이미 나이가 많으니 빨리 시작해야 한다. 네가 원한다면 입학을 도와주겠다”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귀한 도움을 받았는데 당시 난 입학시험에 떨어져버렸어요. 하지만 교수님이 ‘나중에 성공한다면 누가 지금의 너를 기억하겠느냐, 6개월 동안 내 수업을 청강하면서 공부해라’ 하고 힘을 주었고, 이후에 다시 시험을 보고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베를린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에요.”

그후 한국에 온 금난새는 국립교향악단(KBS 교향악단전신)에서 오랫동안 지휘를 맡았고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베를린에서 연주 이상의 가치, ‘청중’에 이끌린 그 마음은 오래도록 하나의 화두처럼 남아 있었고, 새로움에 도전하고자 하는 그의 기질도 용솟음쳤다. 그러던 중 당시 어려움에 처한 수원시향에서 요청이 왔고 그는 과감하게 국립교향악단을 그만두고 수원시향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현재 경기필하모닉에서 인정받는 지휘자로 변모했다.

2000년 금난새의 무한 도전은 결국 ‘벤처 오케스트라’라는 기업 형태의 유라시안필 창단으로 이어졌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탄생이었다. 하나의 기업인 만큼 그는 결국 공연 장소와 후원처를 찾아 뛰어다녔고, 그중 눈에 띈 곳이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 빌딩이었다. 포스코의 넓고 높은 로비가 금난새의 눈에 들어왔던 것. “1층의 넓은 로비를 보니까 음악 연주에 아주 어울리던데 여기서 연주를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외국에서는 성당 같은 곳에서도 연주를 합니다” 하고 그는 포스코 측에 제안을 했다. 당시 포스코는 포항제철에서 민영화되면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던 터라 이 엉뚱한 제안을 파격적으로 받아들였다.

1999년 12월 30일, 새천년을 앞둔 포스코 1층 로비는 1천 석 규모의 멋진 공연장으로 바뀌었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로비에 울려 퍼졌다. 그날 행사는 직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그 후 본사에서의 베토벤 전곡 공연을 비롯해 포항, 광양제철에서의 공연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필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저는 작은 유혹이 또 다른 성공으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지원 한 푼 없던 유라시안필이 1년에 1백40여 회가 넘는 공연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느끼는 작은 유혹을 그냥 넘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포스코 로비에서 펼친 공연은 제품으로 치면 하나의 샘플이었지요. 샘플을 써보고 만족스러우면 그 후에 계속 쓰게 되는 거니까요.”

그날의 성공이 있은 후로, 2000년부터는 두 달에 한 번꼴로 포스코 로비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연주했다. 그 뒤로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전곡 연주회도 열었다. 최근에 그는 계명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3년 전 계명대에서 한 공연이 인연이 되었다. 그 공연은 포스코가 후원해 유라시안필과 함께 1년에 10개 대학을 방문하는 ‘캠퍼스 심포니’라는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한 번의 만남, 작은 유혹을 놓치지 않는 그의 성공 습관이 계속해서 그를 더 큰 성공으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마치면 무대에서 맨 마지막으로 퇴장한다. 일반적으로 연주가 끝나면 가장 먼저 지휘자가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사라진 후 단원들이 차례로 나가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시도하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네기홀 같은 유명한 곳에서 연주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나는 청중을 위한 연주를 할 겁니다. 그래서 사회에 필요한 예술인이 되려고 합니다.”

늘 ‘새로움’, ‘창조’, ‘도전’이라는 단어로 우리들에게 희망과 기쁨 행복을 주는 금난새 지휘자.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그의 용기와 의지와 자신감이 앞으로 또다른 새로움을 안겨주길 바란다.

약     력

1947년 부산 출생
1966년 서울예고 졸업
19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1974년 베를린 음대 유학
1977년 카라얀 국제 지휘콩쿠르 입상
1980년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1989년 KBS교향악단과 국내 최초 오케스트라 녹음 출반
19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94년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 기획·진행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2002년 주식회사 CJ와 오케스트라 후원 계약 체결,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2005년 중구문화재단과 협력계약 체결, 유라시안 필하모닉 충무아트홀 상주
現 유라시안 필하모닉 음악감독,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저서
나는 작은새 금난새 (디자인하우스, 1996)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생각의 나무, 2003)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2 (생각의 나무, 2007)
마에스트로 금난새 - 열정과 도전 (생각의 나무, 2007)
내가 사랑한 교향곡 (생각의나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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