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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더] 전무송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공고 다니면서 유치원때 찍은 무대 사진 보며 연기자 꿈 키워
고교 졸업 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오디션 합격 연극 입문
군 입대와 결혼으로 슬럼프 15년만에 국립극단 입단 재도약

 


깨달음 주는 훌륭한 배우가 마지막 목표


“아직 저는 훌륭한 연기자가 아닙니다. 언제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조문을 온 사람들에게 ‘그는 정말 훌륭한 예술가였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때까지 열심히 연기를 할 것입니다.”

연극이면 연극,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등 다방면에서 거장, 거목으로 연기의 혼을 불태우고 있는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전무송.

 

그는 70살의 나이에도 20대 못지 않는 열정을 발산하고 있는 불꽃남자다.

사실 그의 어렸을때 꿈은 연기자가 아닌 배를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마도로스(matroos, 네덜란드 어)이였다.

그는 “인천에서 인천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였는데 만국공원(인천 자유공원)에 올라가면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군함과 어선 등 수 많은 배들이 밀물과 썰물같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 중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마도로스가 그때는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며 사춘기 시절의 꿈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 꿈과도 전혀 다르게 그는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다.

“그때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길영희 교장선생님이셨는데 앞으로 나라의 미래는 산업이 발달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시면서도 그중에서도 특히 공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셨다. 그때 당시나 지금의 부모님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집에서는 국회의원, 판사, 변호사, 대학교수, 공무원 등을 바라셔서 문과를 진학하기를 원하셨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공고를 진학하게 됐다.”

그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인천기계공착장에서 기차의 바퀴 등 부속품들을 깎으며 일을 하다가 우연히 자신이 유치원때 무대에 서있던 사진들을 발견. 차츰 연기에 마음이 흘러, 눈을 돌려 연기자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다.

전무송 예술감독은 “그때 극장에 가면 선생님께 혼나는 시절이였는데 몰래 극장에 들어가 연기자들이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연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며 고등학교 졸업후 1962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현 서울예대) 오디션에 합격을 해 1964년 1기 졸업을 하며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선다.

그는 또 “부모님께서는 문과를 바랬기 때문에 ‘딴따라’를 한다며 혼나기도 엄청 혼나서 집을 못들어가고 드라마센터에서 지내는 날도 많았다”고 회상하며 “어려서의 마도로스나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나 허영심과 겉멋이 좀 있었던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1964년 졸업작품으로 서울예대 설립자이자 총장인 극작가 동랑 유치진 선생의 작품 ‘춘향전’과 ‘마의 태자’를 통해 데뷔를 하게 된다.

이 데뷔 작품을 통해 반대를 하시던 전 감독의 부모님도 그제서야 연극을 하는 아들을 인정해주고 많은 격려와 관심을 보여주셨다고 한다.

전무송 감독은 “2개의 작품을 하면서 이도령과 마의 태자 등 주인공 역할을 했는데 정말 굉장한 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라고 말을 하지만 바로 군 입대를하고 30살에 전역과 동시에 결혼을 하게 된다.

“배고픈 직업을 꼽으라면 연극하는 사람들도 3개의 손가락안에 들어갔을것이다. 결혼도 하고 해서 생활이 안되고 집사람이 옷감장사도 하고 남대문 시장에서 옷도만들고 고생을 시켜서 그때 미안한 마음에 연극을 처음으로 그만두려고 많은 고민을 했다”며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아니였다면 연극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후 드라마센터 아카데미 입학과 동시에 몸을 담았던 ‘동랑 레파토리’ 극단을 15년만에 떠나 ‘국립극단’에 입단해 또 새로운 비상을 하게 된다.

국립극단 입단 후 배우 안성기씨와 함께 찍은 영화 ‘만다라’가 1981년 개봉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TV와 신문 등 언론에 얼굴이 알려지게 된것이 지금까지의 연극, 드라마, 영화 등에 출현하면서 전무송을 알린계기가 됐다.

영화나 드라마와 연극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연기자의 차이점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진짜같은 가짜가 될 수 있게 연기를 해야한다”며 “영화나 드라마는 마지막을 먼저 찍어도 중간을 먼저 찍어도 상관이 없고 여러장면을 나눠 찍지만 연극은 스크린을 통하는 것이 아닌 바로 앞에서 찍는 것이기 때문에 NG를 내면 안되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순서로 펼쳐지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작품을 찍는 환경이 다른것이 차이점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또 “연극은 재미와 놀이, 철학이 포함돼있는 것이다. 연극의 결론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결론이 어떻든지 간에 관객이 감동을 받고 마음에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으면 성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기를 통해 자신의 역할에 충분히 이해하고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제대로’가 힘들다고 말을 한다.

전 감독은 “내 자신이 연극을 50년 가까이 해오면서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를 펼치면 100%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60~70% 밖에 발휘 하지 못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며 “나중에 100%발휘가 가능하면 내면 연기를 보는 관객들이 ‘저런사람이 되야겠구나’, ‘저런사람은 되질 말아야겠구나’ 등의 깨달음이 있으면 좋겠다”며 교훈적인 연기자가 되길 갈망했다.

현재 안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에 초빙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그는 재학생들의 열정 못지않는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후배들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나는 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없다. 그냥 유치진 선생에게 내가 배운 그 가르침들을 전달만 하고 있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연극을 시작할때는 허영심이였지만 지금 아직도 나는 그 친구들과 다를게 없다. 20대 연극에 입문할때의 그 열정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며 연극을 이제 시작하는 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음은 열정으로 넘치고 연기를 하는데 그 기분가지고 거울을 보면 깜짝 놀란다.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버려서….(웃음)”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전무송 예술감독은 “드라마센터를 다닐때 술을 마시고 수업시간에 난장판을 만들어 유치진 선생께 꾸중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하신 말씀은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였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직도 숙제인것 같다. 아직 인간이 되질 못한 것 같다. 나의 마지막까지의 목표는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을 맺었다.

약 력

▲학력
1957. 인천중학교 졸업
1960. 인천공업고등학교 졸업
1964. 서울예대 1기 졸업(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1998. 고려대학교 산업정보대학원 최고위 정책과정 수료
2002. 고려대학교 문화체육대학원 최고위 정책과정 수료

 

▲수상경력
1978. 제1회 연극 비평가상 연기상 수상(물보라)
1980. 한국일보사 주회 연극연화 예술상(연극부문 연기상)
1981. 제20회 대종상 신인상 수상(만다라)
1981. 제20회 대종상 남우조연상 수상(만다라)
1981. 제2회 영화비평가상 주연상 수상(만다라)
1982. 제6회 대한민국 연극제 연기상 수상(쥬라기의 사람들)
1986. 제22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연기상 수상
1989. 최우수 한국연극예술상 최우수 연극인상 수상
2001. 제3회 KBS 바른 언어상 수상
2004. 서울예대 삶의 빛상 수상
2005. 제15회 이해랑 연극상 수상
2006. 제42회 동아 연극상 연기상 수상(용호상박)

 

▲경력사항
1964. ‘동랑 레파토리’ 극단 입단
1975. ‘국립극단’ 입단
1977. ‘하멸태자’로 미국 뉴욕(라마마 극장), 메니아 폴리스, 달라스 씨어터센터, 프랑스 렌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미켈리 극장) 외 8개 도시 순회공연
1983. 극단 ‘집현’ 창단
1983. 극단 ‘집현’ 창단공연(인천) - 리어왕
1984. 극단 ‘산울림’ 입단
1986. ‘뜨거운 바다(아다미 살인사건)’ - 신주꾸니아 아트홀, 오사카 공연(쯔카고헤이작, 연출)
1989. 프랑스 이비뇽 연극제 참가(고도를 기다리며 - 임영웅 연출)
1992. 극발전 연구회 창립
1993. 미국 L.A 초청 공연(북어대가리)
1994. 일본 오키나와 세계 청소년 연극제 초청공연(북어대가리)
1994. 정도 600년 기념 ‘자랑스런 서울시민’ 선정
1995. 2. 18 서울 가정법원 조정위원 위촉
1998. 공주 영상정보대학 연기학과 겸임교수
1999. 쯔카고헤이 서울특별공연(뜨거운 바다)
1999. 한국 J.T,S 홍보사절 위촉
2000. 9. 28 인천 ‘세계 춤 축제’ 홍보사절 위촉
2001. 6. 19 이천 ‘세계도자기 엑스포 2001 경기도’ 홍보사절 위촉
2001. 국립 중앙극장 국립극단 명예단원 위촉
2002. 3. 16 ‘웰컴 투 코리아’홍보위원 위촉
2003. 서울 예술대학 연극과 초빙교수
2006. 8.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위촉

 

▲주요출연작 (연극)
1964~2005년 연극 주연 60여작품 출연.
2006. 상당한 가족(조르쥬페도 작, 김진만 연출 / 한조섭 역) - 사다리 아트센터 세모극장
2006. 유령(헨릭입센 작, 임영웅 연출 / 만데레스 목사 역) - 산울림 소극장
2007.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작, 장용휘 연출 / 노만수 역) - 경기도문화의전당
용호상박(오태석 작, 연출 / 지팔용 역) - 드라마센터
2008. 전무송이 해설하는 한국문학 - 경기도문화의전당
2009. 용호상박(오태석 작, 연출 / 지팔용 역) - 국립극장
전무송이 해설하는 한국문학 2 - 경기도문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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