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7 (목)

  • 맑음동두천 23.2℃
  • 맑음강릉 23.3℃
  • 맑음서울 24.1℃
  • 맑음대전 23.6℃
  • 구름조금대구 24.4℃
  • 구름많음울산 20.2℃
  • 맑음광주 23.4℃
  • 구름많음부산 21.4℃
  • 맑음고창 21.6℃
  • 흐림제주 22.1℃
  • 맑음강화 22.3℃
  • 맑음보은 20.2℃
  • 맑음금산 21.4℃
  • 구름조금강진군 19.6℃
  • 구름많음경주시 21.2℃
  • 구름많음거제 19.1℃
기상청 제공

[문화리더] 작곡가 이승복씨

만화영화 ‘세일러문’ 오프닝 테마곡 편곡
프리랜서·음악감독 등 작품활동·레슨 병행
라이브러리 음악·콘텐츠 사업 쉼없는 시도
전공자들 가요·영화OST 분야 선호 뚜렷

 


음악가의 이름으로 ‘소리 공작소’ 역할 게을리하지 않을 것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세일러문♬’

1990년대 공중파 TV에서 방영됐던 추억의 만화영화를 손꼽으라고 하면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하 세일러문)’이 빠질 수 없다.

‘세일러문’이 방송될 당시는 만화영화 주제가도 인기가 많아서 어린이들 대부분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1·2절 가사를 통째로 외워서 부르곤 했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며 ‘문 크리스탈 파워!’를 외치던 세대는 이제 세일러문의 주제곡을 mp3에 담아 들으며 어린 날의 추억을 되새기곤 할까. 뭇 소년·소녀들이 세일러문과 만날 수 있도록 국내 오프닝 테마를 편곡한 주인공인 이승복(44·뮤토피아 대표) 작곡가를 만나봤다.

이 작곡가와 세일러문이 만난 건 그가 대학에 다닐 무렵이었다. ㈜대원동화 연출부에 근무하고 있던 때 회사가 국내 저작권을 들여온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세일러문 편곡을 하고 싱글 CD로 만들자고 제안을 했는데 보름 만에 3만 장이 팔려 이른바 ‘대박’을 쳤다. 작곡, 음반 제작 및 기획, 음악 감독에 이르기까지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게 해준 소중한 인연”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작곡도 배운 적 없고 악기 하나 다루지 못했던 그에게 음악은 참 달콤하게 다가왔다. 이 작곡가는 2000년 ‘작은별가족’의 강인구 씨를 만나 악기를 배우고 음악 이론을 접하게 됐다. 이후 그룹 ‘자전거 탄 풍경’의 전신인 ‘키키’의 매니지먼트, 대학 강의, 프리랜서 음악감독 등 그를 찾는 곳도 많아졌다.

작품 활동도 병행한 터라 그가 만든 각 분야의 음악만 해도 수천 곡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는 “밤을 꼬박 새워서 작업을 하고 또다시 레슨을 받고 공부를 해도 지치지 않았다. 또 국내 라이브러리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고 음악을 근간으로 한 콘텐츠 사업도 시도했었다. 물론 너무 앞서 시작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이같이 바쁜 생활을 이어 온 지 15년이 지난 이제서야 국내 음악계나 방송계의 여건에 아쉬움을 느끼게 됐으니 참 행복하게 일해온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그가 음악과 방송계를 접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 작곡가는 “우리나라에서 작곡가라고 하면 대부분 가요나 영화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들 생각한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와 무관하지 않다. 대학에서 실용음악 강의를 하다 보면 전공자들도 그 분야의 작곡을 선호하는 실정이다. 수요는 한정적인데 공급되는 인원이 넘쳐나는 형국을 만들어냈다. TV프로그램 배경음악, 광고음악, 만화음악 등 작곡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만큼 사람들이 시선의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 환경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TV프로그램 음악의 경우 외국에서는 프로그램마다 작곡가가 배정되며 그에 따라 창작되는 배경음악 등의 음원이 풍부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보다 상황이 열악해 대부분 외국의 음원을 고액에 대여해 쓰는 일이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촉각을 다투는 방송을 위해 작업실에서 만든 음악 파일을 손에 들고 방송국까지 배달(?)해야 했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음악 작업 시스템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되면서 동반된 과정의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라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 작곡가는 “디지털 작업은 비용과 소요 시간을 단축시키고 작곡 테크닉의 향상을 불러왔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악기 연주도 가능케 하니 말이다. 하지만, 활동하는 작곡가 중에는 악보를 그리지도, 읽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악보를 그려주는 사람들 따로 고용하는 작곡가도 있다. 작곡가의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오프라인에서 소장하기만 했던 음반을 컴퓨터를 통해 얻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듣는 이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 반면 공급자들의 유통과 홍보는 더욱 치열해졌다. 오랜 시간 음악 활동을 통해 우수한 실력을 연마한 이들도 마케팅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날개를 접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음악을 듣는 이들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요즘은 LP 사운드의 투박함, CD의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까지 MP3, MD 등 소리 파일을 담는 기기를 통해 재현이 가능하며 네트워크의 발전 덕에 손쉽게 디지털 음원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따라 저작권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음악 파일 제공 서비스로 크게 성장한 사이트들이 고소를 당하기도 했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과 저작권 문제로 지금도 ‘논쟁’ 중인 곳이 있다. 궁여지책으로 MP3폰은 각 제조사가 MP3 파일 재생 시간에 제한을 뒀고, 각 사이트는 저작자에게 일정 요금을 지급해 음원을 공급받는 대신 사용자에게는 요금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잘 아는 사람들은 무료로 파일을 얻고, 잘 모르는 사람들만 돈을 주고 음원을 소장한다.

이 작곡가는 “우리나라는 저작권과 CCL(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의 허용조건을 명시하고 그 조건 내에서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장치)의 개념이 들어오고 문화가 정착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디지털 파일이 탄생한 것은 복제와 배포를 위한 것 아니겠나. 하지만, 음악가가 음악자로 인식되는 현실, 저작권 문제로 외국의 음원을 수입해 써야 하는 상황, 홍보의 기회가 없어 좋은 음악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없는 형편, 노력해 만든 작품을 정당한 대가를 받고 공유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문제는 아직도 숙제”라고 말했다.

그 대안으로 고안해낸 것이 CCL을 기반으로 음원을 무료 제공하는 것이다. 뮤토피아(www.mutopia.kr)라는 공간에서 음악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음원을 무료로 제공해 마음 편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독특하고 신선한 실험적 음악 등을 접할 수 있도록 해 선택의 다양화를 꾀하는 것. 또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저작자의 의견을 근간으로 무료 홍보의 장을 마련해주고,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음원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음악가가 ‘음악자’가 되는 현실이 아쉬웠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음악을 만들고 그것을 인정받느냐의 문제다. 인디밴드라 불리는 이들은 실력을 인정받아 팬덤을 형성하고 열심히 공연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과 그들의 음악을 공유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 실용음악 공부를 하며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들, 미디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현재 음원을 수급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며 7월쯤에는 그 공간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일러문과 만남의 문을 열어줬던 그가 이제는 ‘듣는 음악에서 쓰는 음악의 시대’의 문을 열고 있다. 그의 고민과 노력이 빛을 발해 절뚝거리는 음악 시장에서 새로운 문화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실한 열매를 맺게 되길 기대한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