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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더] 정종기 작가

 

등 돌린 세상, 그 만의 ‘畵법’으로 말을 걸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고, 건조한 감정이 오가며, 끊임없이 설명하는 시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소통이 가능해졌지만, 인간관계 혹은 개인이 꾸려나가는 삶의 주제는 갈 곳을 잃었다. 이러한 상실의 시대에 리얼리티 회화를 통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던지는 작가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그들만의 언어’, ‘Talk’ 연작 등을 통해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현대인의 허무함, 정체성의 위기 등을 보여준 정종기(50)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 신념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양시 도심 밖 한적한 곳에 마련된 정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누구보다 먼저 그의 최근작을 만날 수 있다. 어느 곳에서도 선보이지 않았을 작품들은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보다 더욱 생생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 신작들은 그의 연작 ‘Talk’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들이다. 이전의 작품들이 역사·사회적 사건·사고를 주제로 다뤘다면 이번 작품들은 김홍도의 풍속도를 배경으로 했다. 같은 맥락의 작품들이겠으나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시도를 통해 신선함을 전하며, 고풍스럽고도 세련된 이미지는 공간의 무게를 더한다.

마냥 그림 그리기가 좋아서 미술을 시작했다는 그는 외곬으로 평면회화를 고집해왔다. 정 작가는 “다른 작가들처럼 미술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수상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지 않고 평면회화만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반 활동을 하고, 화실에 다니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수채화, 유화만 그리길 바랐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영상작업을 통해 평면회화의 영역에 확장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림이 순간의 스크랩 된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영상작업은 번개처럼 지나가는 인생의 파노라마를 펼쳐보일 수 있다는 장점을 인정하고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렇듯 집중과 고민의 반복 속에서 끈질기게 작품 활동에 매달려온 그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그들만의 언어’, ‘Talk’ 등의 연작을 통해 시대에 화두를 던지며 화제의 작가로 떠올랐다.

2006년 한전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Electronics Humanoid’전에서는 전선 다발 등을 소재로 현대인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인식구조 반영한 평면 작품을 선보였다. 선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곡선이나 직선 형태의 구조를 통해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각종 크고 작은 격자와 원형 구조로 축조된 화면에서는 리드미컬한 내적 울림이 느껴지며, 이는 옵티컬적인 화면 인상과 통한다”며 “전선 다발로 축조된 전자회로 속을 떠도는 정보의 편린들을 상기시키고, 고도로 발달한 전자문명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인식구조를 연상시킨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7년 인사아트센터에서의 ‘인체의 이미지와 내면풍경(Image of the human Body and Inner View)’에서는 ‘그들만의 언어’ 연작을 볼 수 있었다. 정밀한 인물의 이미지는 실재에 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는 동시에 현재에 대한 리얼리티를 살펴보게 한다. 불안한 존재들의 내면 풍경을 전사한듯한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며 현대 인간의 내면 풍경의 실상을 폭로한다.

지난 4월 갤러리 우덕에서의 ‘communication’전에서는 ‘Talk’ 연작을 통해 소외된 현대인의 표상을 보여줬다. 뒤돌아선 인물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이 시리즈는 무심한 듯 하지만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 흔한 뒷모습들로부터 익명의 도시인들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 자아이자 타자의 모습을 중의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대중화와 개인주의로 닫힌 세계를 관망하게 한다.

정 작가는 “현대인의 일상은 대량 복제와 정보화된 이미지의 홍수에 휩쓸려 있다. ‘Talk’는 ‘기억-이미지’를 차용하지만 이미 생산된 이미지를 재료처럼 직접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존재의 불안을 앓는 현대 인간의 내면 풍경을 응시한다”고 설명했다.

‘Talk’ 연작에서 보이는 여인들은 대부분 긴 생머리나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액세서리, 소지품, 세련된 의상 등도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단발을 한 여인들의 모습이 드문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머리 모양에서도 시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여인의 뒷모습 혹은 머리에서는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요즘에도 어느 정도 그 논리가 통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 속 인물들의 액세서리나 가방, 의상 등도 시대상을 반영케 했다. 훗날 그의 작품을 보면 오늘날을 추억하거나 시절을 회상해볼 수 있을 것.

 

 

“그림을 하면서 이론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굳이 학문적인 밑바탕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박사 과정을 택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견고하게 세워진 작가만의 세계관에 연유한다. 그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미지 차용과 탈주체화(Gerhard Richter's Borrowed Image and It's Desubjectivization)’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에서는 대량 생산과 정보화된 이미지 차용 방법에 따른 현대회화 이미지의 형성과정을 살피고, 예술가의 존재가 그 이미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논했다. 또 리히터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에서의 일상성과 그것이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의 작업 역시 리히터의 작품처럼 사진으로부터 출발한 인물회화다. ‘그들만의 언어’ 연작을 보면 정보화된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지만, 팝아트와 포토리얼리즘과는 다른 회화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익명의 인물을 통해 정치·사회적 체제를 비판하기도 하고, 사건·고를 되짚어보게 하는 것은 물론 역사성을 담아 작품에 설득력을 배가시킨다. 그의 회화적 언어와 관람객들과의 소통은 여러 방식으로 진행되겠으나 인간 내·외적인 발견,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명확히 전달하는 힘이 있다.

“불혹의 나이가 됐을 때 인생, 작업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때가 가장 힘을 낼 수 있었던 시기였고, 그 에너지로 지금의 작업에 이르렀다. 한 작가가 모든 영역의 작업을 다 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영역의 작업을 고집스럽게 이끌어야 한다.”

지천명의 그가 말하는 인생의 절정은 ‘현재’다. 그의 붓질을 따라가면 시대의 지도가 보인다. 길을 잃지 않는 그의 작업 세계와 작품들은 말보다 강한 메시지로 가슴에 울림을 준다.

약 력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홍익대학교 출강

뉴욕 첼시 Gallery henoch, 전속작가

▲개인전

2010 communication, 갤러리 우덕, 서울

2009 talk, 아트파크, 서울

상실, 부재의 메시지, 시카고갤러리, 수원

2007 인체이미지와 내면풍경, 인사아트센터, 서울

인간소외와 익명성, hun gallery, 뉴욕

2006 일상에서 발견한 일탈의 미학, 고양어울림미술관, 고양

electronics humanoid,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2001 봄의 움트임, 현대아트갤러리, 서울

봄의 움트임, 갤러리 전람회의 그림, 당진

2000 자연으로의 회귀, 롯데화랑 본점, 서울

1996 자연으로의 회귀, 갤러리 동주, 서울

1995 자연으로의 회귀, 단성갤러리, 서울

▲수상경력

2004 제2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국립현대미술관)

2003 제2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수상(국립현대미술관)

2002 제2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수상(국립현대미술관)

2001 제30회 구상전 공모전 특선 수상(국립현대미술관)

2000 제29회 구상전 공모전 특선 수상(국립현대미술관)

1993 제22회 구상전 공모전 특선 수상(예술의전당 미술관)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한주택공사

한국민속촌미술관

아산병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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