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의 장편소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철학자들이 꿈꾸던 군자의 나라, 백성을 하늘로 섬기는 민본 국가를 완벽하게 설계해 주춧돌에서 대들보까지 일일이 새로 놓아가며 ‘조선’을 세운 한 혁명가의 야망과 좌절과 승리를 써내려간 생생한 이야기다.
정도전의 큰아들 정진은 아버지가 처형당하고 형제 셋까지 죽은 뒤 16년 간 전라도 수군으로 지내며 온갖 시련과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제사를 지내던 어느 날, 큰아들과 함께 어디론가 끌려간다. 이성계와 함께 조선개국 일등공신인 아버지 정도전을 죽이고 가문을 무너뜨린 태종 이방원이 몰래 부른 것.
이방원은 정진 부자, 그리고 세자인 충녕(이도)을 불러들여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정도전 살해 사건’에 대한 충격적인 전모를 고백한다.
이어 정도전은 신원할 수 없지만 그의 장자 정진과 정도전의 손자들에게 모두 벼슬을 내릴 것이며, 정도전의 조선 건국이념을 살리고 정도전의 건국 개혁조치를 그대로 따르겠다고 약속한다.
정도전 자손들은 금고에서 해제되고, 정도전이 받았던 공신녹권과 땅을 돌려받는다. 정도전의 이름에는 역적이라는 누명이 벗겨지지 않았지만 정도전의 자손들은 이후 대대로 요직에 등용된다.
작가는 조선 건국의 기틀을 세우고 민본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음에도 정적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조선왕조 500년간 역적의 이름으로 남아야 했던 정도전의 삶을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인물을 창출하고 사건을 풀어내며 정도전의 살해의 미스터리를 개연성 있게 전개시킨다.
작가는 승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옹호하는 역사의 그 이면을, 역사의 행간에 숨겨진 진실을 소설적 상상력과 치밀한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밝혀낸다.
소설은 우리 역사가 다 말하지 못하고 실록의 행간 속에 숨어 있던 사실들, 누군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그 이면의 역사를 소설적 설정을 통해 치밀하게 구성하고 있다.
작가는 책의 끝자락에 관련 실록 자료와 정도전 연표를 넣어 독자들에게 역사와 함께 했던 정도전의 삶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