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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선착장에 모인 아주 특별한 가족 이야기

韓·日 양국서 ‘인기’ 정의신 작품
성격 좋은 삼촌과 스물아홉 청년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을 만나며
온전한 가족이 돼가는 과정 그려
가족의 붕괴… 시대의 아픔 반영
삶의 대한 심층적인 물음에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연극 ‘가을 반딧불이’

지난 7일부터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가을 반딧불이’는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동시에 주목받은 정의신의 작품이다.

정의신은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시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한 감정 묘사와 과장되지 않은 유머, 그리고 따스한 감성으로 녹여내며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난 해 한국에서 초연된 바 있는 연극 ‘가을 반딧불이’는 점차 가족이라는 개념이 붕괴돼 가고 있는 현시대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며 삼촌과 함께 살아가는 청년 다모쓰. 그가 삼촌과 함께 살고 있는 낡은 선착장에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들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무대 위에 올라 앉은 선착장 세트가 먼저 마음을 빼앗는다. 앞으로 물이 흐르고 뒤로는 숲이 펼쳐진 아담한 선착장은 곳곳에 섬세하게 공들인 흔적이 가득하다. 숲 속에서 반빡이는 불빛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서울 한 가운데 있음을 잊게 만든다.

이 별세계처럼 느껴지는 선착장에서 스물아홉 청년 ‘다모쓰’는 삼촌 ‘슈헤이’와 함께 21년째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 ‘분페이’는 8살인 다모쓰를 삼촌에게 버리듯 맡기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픔을 가진 다모쓰는 그러나 슈헤이와 가족의 정을 맺고 넉넉하진 않아도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다모쓰의 일상에 ‘마스미’와 ‘사토시’가 끼어든다. 술집에서 일하던 마스미는 슈헤이의 아이라며 만삭의 몸으로 선착장으로 흘러들어 온다. 더 가관인 것은 사토시다. 자신의 사정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갈 곳도 없다는 그는 막무가내로 선착장에 눌러 앉는다. 허허실실 사람 좋은 삼촌 슈헤이는 그들을 받아들이지만, 다모쓰는 그들이 거북하다.

마스미와 사토시는 자신들에게 단단한 벽을 쌓고 있는 다모쓰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다모쓰는 요지부동에다 오히려 반감만 키워가고, 자신의 생일 파티 이야기를 꺼내는 그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낀 다모쓰는 급기야 집을 나갈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며칠 째 비가 내리던 날, 집을 나서는 다모쓰를 말리기 위해 한바탕 소동이 이는 과정에서 슈헤이와 마쓰미는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픈 비밀들을 털어 놓는다.

압축돼던 감정이 뒤엉키는 장면에서 인물들은 감정을 폭발시키기 보다는 슬픔을 절제하며 진실을 담은 소통을 시작한다. 자신을 둘러싼 공간의 갑작스런 변화 속에서 다모쓰가 느낀 소외의 원인이 이 진실함에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극은 묻는다. “가족이라면 서로에게 거짓이 없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때로는 가족 간에도 서로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역시 되 묻게 만든다.

선착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이나, ‘전골’, 그리고 사토시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버블’이라는 단어, 사토시와 슈헤이가 주고 받는 소소한 말장난 등의 ‘만담’이라는 코드는 일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그러나 ‘변두리의 공간’, ‘함께 밥을 먹는 일’, 그리고 ‘가족의 위기’와 ‘소소한 대화’ 등으로 환원되는 이미지가 공통분모로 작용하며 소재들은 낯섦을 벗어내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시대의 아픔을 통쾌한 웃음으로 가리기 보다는 적절한 유머와 이를 넘어서는 깊이있는 물음으로 풀어내고 있는 점이 극의 두드러지는 장점이다. ‘잔잔한 감동’이라는 이 상투적인 표현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 진다. 자극적인 소재와 격정으로 장면을 채우는 최근의 영상 작품들을 접하면서 느낀 위화감의 원인이 명료해 진다. 억눌러진 감정을 폭발시켜 카타르시스를 끌어내지만, 삶에 대한 심층적인 물음에는 닿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연극 ‘가을 반딧불이’는 오랜만에 만난, 진정으로 ‘잔잔한 감동’을 가진 작품이다.

귀신이 돼서야 헤어지며 약속했던 슈크림빵을 사가지고 돌아온 분페이가 아들과 화해하고, 여름과 가을의 사이에서 불빛이 반딧불이의 것인지 혹은 분페이의 마지막 인사인지 모를 순간에, 온전히 가족이 된 그들의 모습이 두 눈에 머물며 흐믓한 미소를 만든다. 어느새 겨울의 추위를 대신하기 시작한 봄의 기운이 한 층 따스해져 가슴을 덮힌다.

조은컴퍼니 김제훈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김정호(슈헤이), 이항나, 송인경(이하 마스미), 배성우, 이도엽(이하 사토시), 김한(분페이)을 비롯해 유승락과 이현응(이하 다모쓰)이 출연한다. 공연은 3월 2일까지 이어진다.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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