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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용인 민속촌 안의 옹기 생활관을 찾아갔을 때, 나는 옹기들이 그토록 다양한 형태로 빚어지며, 또 그것에 걸맞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내가 그만큼 옹기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나는 이제껏 도자기류에 관련한 것들은 많이 접해왔다. 방송, 잡지, 신문 등등. 심지어는 학창시절에는 교과서를 보며 이것은 고려시대 무슨 도자기, 이것은 조선시대 무슨 도자기하고 암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이제 옹기라는 또 다른 그릇의 세계를 접한 것이다. 옹기는 나에게 대체로 항아리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정보라고는 서양그릇이나, 플라스틱, 유리그릇과는 달리 숨을 쉰다는 것이었다. 나의 옹기에 대한 상식은 그만큼이나 빈약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 대부분은 도자기 그릇에 식사를 하고, 곡물을 담고, 양념을 담았나?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은 그저 병사 아니면 포졸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역사라는 것은, 그리고 조상의 숨결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순신을 앞세우고, 도자기와 거북선을 타고 우리에게 온다. 결코 귀떼기기름병이나 오지밥통을 타고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귀떼기 기름병이나 오지밥통을 타고 오는 역사는 사라져도 좋단 말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는 용인의 한국민속촌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용인 민속촌을 돌면서 이런 생각을 한 듯 하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내가 연자방아를 돌아 남부와 북부, 그리고 중부지방의 민가를 돌았을 때, 제주도 민가와 짚신공방을 지나 물레방아에 접어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경복궁을 거닐 때와는 또 다른 색채의 위안과 여유였다. 일테면 그것은 친근하고 낯익은 위안과 여유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승마체험장의 옆의 원형 공연장에서 농악패와 줄타기 등의 공연들이 있을 때, 너는 공연자 나는 관객이라는 구분을 넘어, 마치 이웃집 아저씨가 공연하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 속에서 그것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농악패와 줄타기의 공연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면도 있었다. 관객 수도 적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민속촌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또 영화에서 또 이런 저런 행사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전통놀이는 우리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것인가?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두 명의 여성이 널뛰기 묘기를 선보였을 때, 나는 찬탄을 하면서도 어쩐지 서커스를 보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고요하고 나지막한 조선의 풍경에서 무척이나 날카롭고 수직적인 풍경이었다. 아마 경복궁이나 다른 장소였다면 조금 달랐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홍예교 건너의 장터였다. 그 곳에는 수많은 공방과 음식점이 있었다. 말 그대로 저자거리였다. 그리고 저자 거리답게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산다, 사진을 찍는다, 음식을 먹는다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객주집에 들러 장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조선시대의 건물 안에서의 식사 때문인지, 아니면 종업원들의 조선식 복장차림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북적거리는 사람들 안에서 장국밥을 먹는 것이 어쩐지 잠시 조선시대에 들러 국밥 한그릇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유쾌하면서도 즐거운 것이었다. 나도 아마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장돌뱅이이거나 나무짐을 지는 나무짐꾼이거나 아니면 농사짓는 평민이거나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객주집에 들러 국밥을 먹고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용인의 민속촌은 조선이라는 테마로 지어진 거대한 공원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잠시 현대인이라는 것을 잊고, 친근한 과거 속에서 또 다른 신분을 꿈꾸어볼 수 있는 공간이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적 의의보다도 더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민속촌처럼 우리의 시간을 몇 백 년 전으로, 그것도 삶이라는 것과 밀착된 감각 속에서 되돌릴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나는 마지막으로 양반가와 관아를 거쳐 민속촌을 빠져나왔다.
하늘에서는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고, 내 옆으로는 일본인들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웃고 이야기하며 민속촌 주변의 상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조선의 한 귀퉁이를 살짝 돌아 나온 기분이었다. ■ 글=이재웅 작가 ■ 사진=장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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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