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 산책]애월 혹은

2013.07.14 20:18:24 20면

 

애월 혹은/서안나

애월(涯月)에선 취한 밤도 문장이다 팽나무 아래서 당신과 백 년 동안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서쪽을 보는 당신의 먼 눈 울음이라는 것 느리게 걸어보는 것 나는 썩은 귀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애월에서 사랑은 비루해진다

애월이라 처음 소리 내어 부른 사람, 물가에 달을 끌어와 젖은 달빛 건져 올리고 소매가 젖었을 것이다 그가 빛나는 이마를 대던 계절은 높고 환했으리라 달빛과 달빛이 겹쳐지는 어금니같이 아려 오는 검은 문장, 애월

나는 물가에 앉아 짐승처럼 달의 문장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서안나 시집, 립스틱의 발달사/ 천년의 시작/2013



 

 

 

아무 상관도 없던 한 지명(地名)이 선뜻 다가와 한 생을 거기서 나서 사랑하고 늙어죽은 것처럼 사무칠 때가 있다. 시인에게 애월은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왔을 것, ‘사랑하는 이와 백 년 동안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그러나 풍경은 살아있는 것이어서 이미 취한 이를 한 정점에 오래 세워두지 않는다. 비로소 ‘당신의 먼 눈 울음이라는 것’ 귀가 무디어지고 ‘사랑은 비루해진다’. 다시 최초의 애월에게로 ‘젖은 달빛 건져 올려 소매가 젖었을’ 그 빛나는 이마를 만져보며 한 마리 검은 짐승처럼 달의 문장을 빠져 나가는 것이다. /최기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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