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근 ㈔상호존중과배려본부 총재

2014.09.04 15:41:07

 

임진왜란 당시 북관대첩 주인공인 정문부 장군의 22대 후손인 소년은 지리산이 남으로 뻗어 오대산을 이루고 다시 동으로 뻗어나가 맥을 형성한 월봉산 자락인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느 농촌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쇠꼴을 베려 들과 산을 헤매고 밀과 감자를 몰래 서리해 구워먹느라 얼굴이 온통 숯검정으로 범벅이 되곤 했다.

아무렇게나 꺾은 나뭇가지를 칼로 삼아 골목대장이 되어 전쟁놀이를 했고, 타고난 리더 기질로 초·중학교 시절 반장은 늘 그의 몫이었다.

독학으로 한글과 간단한 한문을 깨우친 아버지는 아들이 철이 들 무렵부터 거짓말을 하지 말 것과 예의를 지키고 친구 간 신의를 중시할 것,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 되라고 일렀다.

어릴 때부터 장래 희망이었던 장군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한 후 중장의 자리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던 그가 바로 현역시절 국군 역사상 최초로 병영문화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했고 전역 후 ㈔상호 존중과 배려 본부를 출범시키면서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두근 총재다.





“참담한 심정입니다. 결코 있어선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사건에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만약 제가 병영에서 펼쳤던 상호 존중과 배려(상존배) 운동이 지속됐다면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육군훈련소장과 6군단장을 역임한 정두근(62) 예비역 중장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총기난사사건과 병사폭행치사, 자살 등 병영사고와 관련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정 예비역 중장은 지난 2003년 12월 32사단장 시절인 2010년12월부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을 끝으로 예편되기까지 7년 세월 동안 장병 상호간 존중하는 언어사용과 반듯한 경례 후 정감어린 인사말 하기, 경청과 칭찬의 습관화 등 예절을 바로잡는 병영개선 작업을 벌였다.

그는 병영에서 상존배 운동을 시도하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역했지만, 그의 이런 노력이 정착되었다면 현재의 참혹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세간의 여론이 일고 있다.

그와의 만남은 지난달 12일 전역 후 상존배를 사회에 접목시킬 목적으로 차린 서울 마포구 도화동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지금의 잘못된 군대문화는 일제 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갔던 국민들이 체험했던 것으로 그 잔재가 없어지지 않고 대대로 내려온 것 때문입니다.”

군대의 폭행 등으로 인한 각종 사고의 잘못된 병영문화의 시발점을 묻는 질문에 곪은 역사의 뿌리는 깊다고 했다.

부모로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직접 보고 자란 그가 최초로 병영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막연한 생각을 가진 게 된 계기는 소대장 때 평소 쾌활하고 병사들 사이에 신뢰가 높았던 소대 막내가 총기 자살을 했을 때로, 그는 그날 이후 지휘관으로서 외형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가슴깊이 새겼다.

또한 지휘관(중대장)이 된 후 건축하던 창고가 무너져 여러명의 병사가 다친 사고를 목격한 뒤부터는 ‘모든 사고는 우연히 아니고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사고 전에 징후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새기고 모든 일에 만전을 기하려는 습관을 가졌다.

상존배의 본격적인 시도는 사단장에 부임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취임 후 한 달이 지난 뒤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욕설과 폭행, 성추행 등으로 잇달아 7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생긴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전에도 느낀 바가 있었지만 상급자는 하급자, 선임병은 후임병에게 반드시 하대어를 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강합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후임병을 늦게 입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말을 하고 욕을 예사로 하는 것을 보고 상호 존중어를 사용하면 폭언과 욕설, 구타, 가혹행위가 근절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운동은 주위의 우려에도 육군훈련소장과 6군단장 재임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행하는 뚝심을 보였다.
 

 

 


특히 훈련소장 재임 시 사용하지 않던 연무회관을 리모델링해 입소 장병과 가족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달라진 병영의 모습을 자체 제작한 영상을 보여줘 부모들을 안심시켰다.

“상존배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병사들의 설문조사에서 32사단은 폭행사고가 시행 전보다 80% 감소했고 6군단도 형사처벌사례가 66건에서 42건으로 대폭 감소했습니다. 특히 의사소통과 친밀감 유지, 군 기강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높게 나왔지요”

그러나 상부 지휘관의 중단 지시에 4차례 위기를 겪었고 그 때마다 이해를 시키는 등 의지를 꺾지 않았다.

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시절엔 직책상 제대로 실시하지도 못했다.

그는 2010년 12월 전역 이듬해인 1월 과천으로 이사한 후 7개월 뒤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본부 사단법인 인가에 이어 이듬해 1월 출범식을 열고 총재 자리에 앉으면서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면에선 선진국 문턱에 왔지만 국민의식과 문화는 뒤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은 과거보다 더 심화됐고 학교의 왕따와 폭행은 군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정신적 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그는 예비역 중장이란 딱지를 떼고 학생들이나 시민들에게 인성을 심어주기 위해 강연이나 세미나 개최, 교육 등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자서전인 ‘덕불고’(덕은 이롭지 않다)와 ‘선진국가로 가는 정신운동. 장군의 상호존중과 배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정 총재는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간 남편의 뜻을 곁에서 말없이 따라주고 격려해준 아내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첫 번째 상존배 운동의 중단 위기를 만난 직후 어쩌면 진급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런 뜻이 내포된 말을 전화로 했으나 말리기는커녕 소신껏 하라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지요.”

그 후에도 법인 설립에 필요한 출연금과 사무실 운영비 등을 위한 자금에는 친인척과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아내가 군소리 없이 아파트 담보대출금으로 선뜻 내줄 때엔 괜스레 마음고생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미안했다고 했다.

정 총재는 인터뷰 말미에서 군대의 바람직한 리더상으로 전문지식과 지혜, 덕, 신뢰와 소신, 용기와 책임감, 경청, 비전제시, 철저한 자기관리를 들었다.

반대로 리더가 가져서는 안 될 품성은 사리사욕, 무사안일주의, 시기심, 자만심과 독선, 집단이기주의 등을 꼽았다.

비단 군대뿐 아니라 일반사회에도 적용되는 그 말은 그런 사람이 지휘관이 되면 병영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란 속뜻이 담겨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과천=김진수기자 kjs@

 

김진수 기자 kjs@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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