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남편

2017.03.23 19:34:53 16면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이 시에서 언급했듯이 아버지도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어정쩡한 남편이라는 명사, 때론 친구였다가 더 욕심을 내자면 애인의 감정이기를 슬쩍 욕심내 보지만 연애시절 서로를 달뜨게 하던 찻집도 골목길도 없다. 퇴근과 출근 사이에 스치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굽은 어깨, 술에 찌든 낯빛만을 덮어쓰고 있다. 이 남자, 나를 숨 멎게 했던 그 남자 맞나 싶다가도 용돈 몇 푼 더 달라고 떼 아닌 떼를 쓸 때면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 녀석과 뭐가 다를까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새벽녘 고열로 아팠을 때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찬 물수건을 대주는 것 또한 남편이다. 나란히 누워 각자의 세상으로 등 돌리다가도 다시 돌아누워 슬쩍 한 쪽 다리 올려놓으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남자. 소설도 이런 막장 소설 없다고 전쟁을 치르다가도 슬며시 화해의 몸짓을 보내는 나와 가장 많이 밤을 쓴 내 남자다. /정운희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원본사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일로 8, 814호, 용인본사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인천본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45-1, 3층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경기, 아52557 | 발행인·편집인 : 표명구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