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오래된 미래

2017.05.10 20:12:04 16면

 

겨울이 품고 있던 봄빛이 터져 나오는 계절, 한국 문화예술회관 연합회의 문예회관 종사자 해외연수에 참여했다. 전국 204개 문예회관 중 15개 기관의 종사자를 선발, 진행하는 연수였으니 큰 행운이었다. 연수팀이 방문한 나라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였다. 각국의 중심 도시인 파리, 뮌헨, 잘츠부르크, 비엔나의 유수한 공연장과 문화기관을 방문하고 공연과 전시를 보았으며, 해외 전문가들을 면담했다. 이동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두세 개 이상의 일정이 쉽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커지는 문화적 충격으로 7일의 여정이 짧기만 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자국의 문화예술 유산과 전통을 오롯이 계승하고 재창조하는 철학이다. 그 중심에는 유럽 공연예술의 고전인 오페라가 있었다. 주지하듯이 ‘오페라 가르니에’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모두 1800년대 지은 극장이다.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세계적 문화유산이지만 현재도 오페라를 연간 수백 회씩 공연하며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프랑스는 매우 개방적으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꾀하고 있었다. 상시 극장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방문이 가능한 ‘오페라 가르니에’와 한편으로 오페라의 대중화를 선언하면서 설립한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1989)이 그것이다. 바스티유 극장은 편안한 복장과 5유로에도 관람 가능한 티켓이 있을 정도로 오페라의 문턱을 낮추었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극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와 고도화된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공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체 제작하여 세계적 수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독일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 역시 총 128개에 이르는 가격으로 국민을 위해 열린 극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헛된 가격정책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극장측이 발표한 2016년 운영결과는 놀라웠다. 공연회수 451회, 방문객수 56만653명, 객석점유율 97%의 믿기 어려운 통계였다. 다행히 나의 의구심은 사전 예약으로 참석한 2017/2018시즌 프리뷰에서 다소 해소되었다. 극장장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시즌작의 주제는 ‘당신의 상처를 보여줘'이다. 이 주제는 동시대 삶의 문제, 즉 테러, 난민, 빈곤과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페라를 통해 현실 인식을 끌어내려는 의도이다. 그런데 시즌 초연작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푸치니의 <일 트리티코>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등 고전이다. 즉 고전을 새롭게 연출하여 주제에 접근하는 예술적 전략이다. 그리고 극장을 가득 메운 열기는 이러한 예술철학에 대한 예술가와 기획자와 관객의 진지한 합의를 의미했다.

더불어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사랑도 놀랍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연간 300회 이상의 공연과 평균 99.4%의 매표율을 자랑한다. 주목할 점은 오페라가 세계인의 음악축제로 꼽히는 잘츠부르크 축제의 주된 공연장르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6주간의 축제를 위해 3년 전부터 기획하고, 3천명 이상의 전문스텝이 참여하는 세심한 준비와 진정성이 100여 년의 역사를 일구고, 해마다 25만의 관람객을 이끄는 원동력이란 생각이다. 또한 우수한 음악극의 전통은 세계적인 뮤지컬을 제작하는 원천이 되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모차르트> <레베카> 등은 비엔나극장협회의 작품이다. 뮤지컬계에서는 후발주자이지만 현재는 가장 뜨겁게 뮤지컬의 역사를 쓰고 있다.

이렇듯 유럽의 극장은 예술적 자산을 소중한 원천으로 삼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창의적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예술을 통해 삶의 문제를 재인식하고 ‘인간’의 존재를 깊이 있게 탐구하려는 진정한 예술철학이 놓여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현실을 성찰하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치열함과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레퍼토리로 축적하는 체계적 시스템이 문화강국으로서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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