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번지점프

2018.01.15 19:11:11 16면

번지점프

/최인숙

발목을 묶으면 앞이 사라집니다
앞이 사라지면서 앞 대신 깊이가 생겨납니다
햇살이 뱀의 허물처럼 벗겨집니다
물 위에 음각되는 얼굴들은 가볍고 섬세해서
둘둘 말아 쥐거나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자리의 눈을 빌려 허공을 조각내고 있습니까
벗어나지 못한 고치처럼 지금 내 발을 당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과 코와 입이 다 눈으로 몰려듭니다
던져버릴 것은 다 던졌는데 나는 왜 여기에 묶여 있습니까
할랄하고 난 살코기처럼 나를 내게서 떼어 내십시오
나를 풀어 주고 강물은 다시 산 그림자를 우물거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지퍼처럼 자기를 열고 뛰어내립니다

-최인숙 시집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


 

 

 

번지 점프란 무엇인가. 그것은 텅 빈 허공을 향해 나를 내던지는 일이다. 아주 잠깐새가 되어보는 일이다. 그 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온전한 몰입이다.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목숨을 내어놓는 일, 그 도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 나를 내어놓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나를 내던지는 일이며 현재의 밟고선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발목을 묶고 있으면 앞도 사라지고 햇살도 뱀의 허물처럼 벗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의 발전을 위한 일이란 눈앞의 난간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자리의 눈을 빌려 허공을 조각내며 산 그림자를 우물거리고 있는 강물처럼 정체된 나를 나에게서 떼어내야 한다. 할랄하고 난 살코기처럼 과감하게 분리하여야 한다. 변함없이 주어지는 오늘과 내일의 새로움을 위하여. /서정임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원본사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일로 8, 814호, 용인본사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인천본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45-1, 3층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경기, 아52557 | 발행인·편집인 : 표명구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