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앵두맛

2018.10.02 19:30:00 16면

앵두맛

                             /한용국



함께 걷던 사람이

나무를 가리키며

앵두군요라고 말했다



붉고 동그란 열매들이

먼 나라의 언어 같았다

열매 속은

잉잉거리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유월이군요

이상기후가 계속되지만

여전히 앵두는 익어가는군요



앵두 몇 알을 입에 넣었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어디로 걸어 가는지?

알 수 없어졌다



이런 게 앵두 맛이군요

고개를 돌렸는데

앵두나무도 없고

함께 걷던 사람도 없었다


 

 

 

두 사람이 함께 걷다가 흩어진다. 한 사람은 너머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은 두리번거린다. 둘 중 한 사람이 멈춰 서서 ‘나무’처럼 생긴 것에 손을 댄다. 그가 말한다; “앵두군요.” 또 다른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붉고 동그란 열매들’을 만진다. 마치 아주 먼 나라의 언어처럼,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앵두의 내부에서 잉잉거린다. 한 사람이 침묵을 깨고 말한다. “유월이군요/ 이상기후가 계속되지만/ 여전히 앵두는 익어가는군요” 이상기후여서 앵두가 썩어갈 것만 같았는데, 나무의 내력이 깊어 열매의 목숨 또한 지킨다는 뜻일까. 아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두 명의 화자가 함께 길을 걷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무처럼 생긴 형상이 붉고 동그란 무엇을 밀어내는 것을 보게 된다. 먼 나라의 언어처럼 잉잉거리는 ‘그것’의 내부를 보고, ‘앵두’라는 이름을 붙인다. 앵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만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앵두라는 ‘것’에 집중한다. 앵두 몇 알을 입에 넣고 씹으니, 문득 길의 방향과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가 앵두의 ‘시큼한 맛’을 기억해내자 “앵두나무도 없고/ 함께 걷던 사람도 없”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앵두’라는 이름에 달라붙은 그림자일 뿐이다. 거기에는 의미를 확정하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한 사람이 ‘기억’의 이뇨를 통해 과거와 미래로 흩어지면서 분열되었던 것이다. /박성현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원본사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일로 8, 814호, 용인본사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인천본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45-1, 3층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경기, 아52557 | 발행인·편집인 : 표명구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