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봄날

2019.03.19 19:13:00 16면

봄날

/이병초

꽃부터 솎아야 한다고들 해서

가지가지 온통 하얀 사과꽃 앞에 섰는데

어떤 꽃을 솎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수정된 꽃인지 아닌지 모두지 알 수 없어서

너 통하였느냐 물어보려는 참인데

꽃이 손가락 끝을 세워

벌의 어딘가를 긁어대는지

사알살 긁고 긁힐수록 살은 파들거리며

머릿속의 무거운 것들이 시원하게 긁혀 나오는

수상한 쾌감을 맛보는 건지

발소리 죽이고 어서 빠져나가야겠다 싶은데

어라, 사과나무에서 실눈 뜬 새싹들

숨이 몽글몽글해졌다

-이병초 시집 ‘까치독사’

 

 

 

 

어느 철학자가 ‘통(通)’의 불가능성을 말했다지만, 이 봄에는 그런 ‘완벽한 통’이 아니더라도 ‘시원한 통’ 같은 거 한번 할 수 없을까. 내가 손가락 끝을 세운 꽃이 되어 너의 머릿속 무거운 것들을 긁어주고, 그 무거운 것들이 시원하게 긁혀 나오게 할 수는 없을까.네가 손가락 끝을 세운 꽃이 되어 나의 머릿속 답답한 것들을 사알살 긁어주고, 그 답답한 것들이 시원하게 긁혀 내 생각이 쾌감으로 파들거리게 하는 일 한번 없을까. 주변의 딱딱한 숨들까지 몽글몽글해지게, 무겁고 답답하고 꺼림칙한 것들 몽땅 긁혀 나오게 하는 그런 ‘통’ 어디 없을까. 까짓것, ‘통’한 다음 얼떨결에 솎아내어진다 할지라도./김명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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