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의 인천얘기 1. 온라인 성묘

2020.09.08 12:57:54 15면

 

 우리 전래의 ‘관혼상제(冠婚喪祭)’ 가운데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시된 의식은 단연 제례일 것이다. 물론 양반과 형편이 넉넉한 일부 양인들에 국한된 일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해도 우리에게 친숙했고, 지금도 일부 종가를 중심으로 엄격히 지켜져 내려오고 있는 이 같은 제례의식은 유교문화의 질서가 생활 저변에 깊숙히 자리하기 시작한 조선 중기 이후 뿌리를 내렸다.

 

조선 500년을 관통해온 통치이념은 충(忠)과 효(孝)였다. 그러나 충과 효가 충돌하면 효를 앞세웠다. 그만큼 조상과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한 사회가 조선이었다. 부모가 사망하면 아무리 좋은 관직에 있더라도 즉시 물러나 묘 옆에 초막을 짓고 3년 간 시묘살이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다.

 

나라에 일이 생겨 임금이 불러도 좀체 나가지 않았고, 또 그것이 용인됐다. 정 다급하면 명을 통해 기복(起復, 복상 중인 관리에게 직무를 보게 하던 제도)시키기도 했으나 드문 경우였다. 자식이 출세해 부모나 조상의 위명을 높이는 것, 이를 지고의 효로 여겼다.

 

책을 읽거나 사극드라마를 볼 때 ‘종묘(宗廟)’라는 말을 흔히 접한다. 삼국시대 이후 시기를 불문하고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곳, 종묘는 나라 안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단(壇)인 ‘사직(社稷)’과 함께 ‘종묘사직’은 그 자체로 국가를 상징했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임금이 친히 거둥해 이곳에서 지내는 대제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제례였다. 지금도 매년 5월과 11월 두 차례 당시를 재현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으로 대표되는 조선사람들이 성묘나 제례를 대하는 관념, 자세, 실행은 정말 남달랐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생생한 모습들이 각종 문헌을 통해 적지 않게 전한다.

 

쇄미록(瑣尾錄)은 조선중기의 학자 오희문(1539~1613)이 1591년부터 1601년까지 9년3개월 간 임진·정유 양 난을 겪으면서 꼬박꼬박 써내려간 일기로 보물 1096호다. 국왕의 교서, 의병들이 쓴 글, 유명 장수들의 성명문, 각종 공문서와 함께 전란 당시 의병들의 활약상, 왜군과 명군의 잔학상, 참혹했던 백성들의 생활 모습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 책에 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전쟁이라는 혼란의 와중에도 1년에 제사를 20여 차례나 지냈다는 기록이다. 조상을 모시고 기리는 의식이 얼마나 투철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배를 가기 앞서 꼭 들르는 곳이 집에 모셔진 사당과 선영이다. 평상시에도 게을리하지는 않았겠지만 언제 돌아올지 기약 없는 유배 길에는 반드시 빼놓지 않았다. 이 형벌이 결정되기까지 받아야 했던 혹독한 고문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이 1801년 신유박해로 경상도 유배를 떠나는 길에 충주 하담(荷潭)의 선영에 들러 부모의 묘 앞에서 남긴 몇 편의 시는 그 애절함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흰둥개가 앞서 가고 누렁이가 따라가는 / 들밭 풀가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 제사 마친 할아버지는 밭두둑 길에서 / 저물녘에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해서 돌아온다’ 조선 중기 고죽(孤竹) 최경창, 옥봉(玉峰) 백광훈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이름을 날렸던 손곡(蓀谷) 이달(1539~1612)의 시다.

 

전쟁(임진왜란) 통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무덤을 찾아 제사를 지낸 뒤 북받치는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거나하게 취해 손자의 손에 기대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이 애틋하다.

 

코로나19로 올 추석연휴 5일 간 인천가족공원이 폐쇄된다. 이 기간 중 방문 자체가 안 된다. 정해진 기간에 미리 찾아뵙거나(9월12~29일) 온라인으로 성묘를 해야(9월28일~10월11일) 한다. 확산 방지와 이용객의 건강 보호,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를 위해 내려진 당연한 결정이지만 아쉽고 허전한 마음까지 쉽게 닫혀지지는 않는다. [ 인천본사 편집국장 ]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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