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망의 바이러스 전파자, 세계봉사단

2020.10.07 08:14:11 16면

지난해말 출범 이후 다양한 봉사활동 전개
구재규 단장...열정과 노력, 성실한 실천으로 봉사단 이끌어

 

 구재규(66) 세계봉사단 단장은 늘 바쁘게 산다. 본업인 사진관 운영 외에 봉사단 모임과 행사를 치러야 하고, 조찬모임 등 지역의 각종 자리에도 가급적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교회 관련 일에도 열성이다.

 

구 단장이 세계봉사단을 만들어 이끌기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2015년 11월 무렵이었는데, 5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제가 운영하는 사진관에 찾아왔어요.” 마침 김장봉사와 관련해 통화를 하고 있던 구 단장 앞에 이 여성이 느닷없이 돈봉투를 내밀었다.

 

미처 물어볼 사이도 없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던 구 단장에게 “좋은 일에 써 달라”는 말만 남긴 채 여성은 사라졌다. 봉투 안에는 30만 원 가량의 돈이 들어 있었다. 이후 여성은 매년 그맘 때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10여 년 전부터 봉사에 관심을 갖고 개인적으로 또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벌여오던 구 단장은 몇 년 간 이어져온 이 여성과의 인연을 계기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봉사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 분이 서양화가 박성은씨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죠. 고마운 마음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세계봉사단이다. 지난해 11월 공식 출범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구 단장의 뜻에 의기투합한 50여 명이 참여했다. 변호사와 세무사, 노무사, 경영지도사 등 전문직에서부터 대학교수, 은행지점장, 병원 원무부장, 자동차대리점 사장, 경호회사 사장, 권투체육관 관장, 다양한 업종의 자영업자들에 이르기까지 직업군도 다채롭다.

 

이들은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점심식사를 하며 정례모임을 갖는다. 그간의 활동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점검한다. 구 단장은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봉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단원들을 봉사·홍보·기획행사·재정·회원조직관리·대외협력 등 6개 팀으로 나눴다.

 

누구 하나 맡은바 일에 소홀함이 없다. 정해진 모임이나 봉사현장에 빠지지 않는다. 출범한지 10개월이 지났지만 불협화음 한번 난 적이 없다.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노력, 성실한 실천으로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구 단장의 리더십 덕분이라는 게 단원들의 말이다.

 

봉사를 위해 펴는 이들의 손길이 닿는 곳은 무척 넓다. 아동과 청소년,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노동자와 여성, 국가유공자, 해외 입국 사회적 소수자, 저소득 주민 등 다양하다. 쌀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후원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직접 초청해 식사도 제공한다.

 

아동·청소년 보호시설인 신명보육원과 요양원, 계양구 노숙자쉼터, 인천 가출청소년쉼터 한울타리, 외국인 노동자 송년행사장, 삼산사회복지관, 부평역 광장... 세계봉사단원들의 따뜻한 숨결이 배어 있는 곳들이다.

 

요즘은 코로나19로 특히 힘겨워하는 이웃들을 돕는 일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마스크와 쌀, 미역 등을 전달하는가 하면 많지는 않지만 쉼터 등 시설 수리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봉사단은 앞으로 낯선 남한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자 가정에도 도움의 손길을 나눌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한국전쟁 때 받은 도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한다는 취지에서 동남아시아지역 참전국을 찾아 우물을 파 주고 학생들의 고사리 손에 학용품도 건네주고픈 마음이다. 계획은 오래 전에 세웠지만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힌 상태. 상황이 좋아지면 꼭 실천한다는 방침이다.

 

경상도가 고향인 구 단장이 인천과 인연을 맺은 지도 40년이 넘었다.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들 키워 결혼시키고, 무엇보다 ‘봉사’라는 새로운 삶에 눈 뜨게 해준 인천은 이제 고향이나 다름없다.

 

구 단장은 군대를 제대할 무렵인 1977년, 조선일보에 실린 채용광고를 보고 시험을 치러 당시 동구에 있던 한국판유리에 입사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도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사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1980년대 초, 그 때만 해도 큰 마음을 먹어야 했던 카메라를 어렵사리 마련한 구 단장은 대한서림에서 책을 구입해 혼자 사진공부를 하면서 여기저기 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입사한 지 몇 년 만에 회사생활을 정리한 뒤 중앙대학교에 등록, 1년 동안 본격적으로 사진수업을 받았다.

 

이후 개인적으로 사진작업을 해오다 부평에 개인 사진관 문을 연 것이 1998년.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째 사진작가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 동안 무료로 영정사진이나 결혼식 사진을 찍어 준 사람들은 일일이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난 20여 년 간 봉사활동 공로로 인천시장, 인천시의회 의장,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등으로부터 받은 상과 사진 부문에서 수상한 KBS 사장상, 동아일보사 상은 그의 성실하고 열정적인 삶에 따라온 자연스런 결과다.

 

 

앞으로 남은 인생 구 단장의 키워드(Key Word)는 ‘사진·운동·환경·봉사’다. 건강해야 봉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틈이 나면 산에 오른다. 등산은 기도와 함께 힘 들고 어려울 때마다 지탱해주고 힘을 주는 버팀목이다. 또 환경문제에도 최근 많은 관심을 쏟으면서 관련 행사 참석은 물론 작은 것부터 스스로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구 단장은 어렸을 때부터 선친이 입버릇처럼 들려 주었던 ‘일취·일예·일기(趣·藝·技)’라는 말을 한평생 가슴에 꼭꼭 담아 왔다. 덕분에 큰 탈 없이 지금 여기까지 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웃음 박사보다 밥 사는 사람이 높고, 밥 사는 사람보다 봉사가 높다는 말이 있어요. ‘가슴에 사랑을, 손길에 나눔을’이라는 우리 봉사단의 슬로건처럼 따뜻하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힘이 닿는 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그의 봉사예찬은 끝이 없다. 구재규 단장 그리고 세계봉사단원들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인천지역 곳곳에 퍼트리는 희망과 사랑의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전파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글 = 이인수 기자, 사진 = 세계봉사단 제공 ]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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