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을 가다 3 - 강화도, 강력한 역사문화를 간직한 섬(1)

2020.10.15 13:29:40 15면

 

 김석훈/ 문학박사·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인간은 함께 사는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작금의 병리적 현상은 코로나19가 만든 아이러니한 얘기다. 민족 고유 명절인 추석에도 고향 방문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렇듯 멀리 가기는 부담스럽고 집에 있기는 가을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요즘, 감염병 예방도 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가볼 만한 가까운 섬은 없을까? 그래서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는 강화도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역사 문화와 자연 유산, 이번 회는 역사 문화를 찾아 떠나볼까요?

 

강화도의 역사 문화 이해를 위해서는 지정학적 위치 파악이 중요한데 첫째 담수과 해수가 섞이는 기수역이라는 점, 둘째는 삼국 혹은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황해에서 예성강, 임진강, 한강을 거쳐 개경(개성)과 한양(서울)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즉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이를 증명하는 유적, 유물이 곳곳에 있어 마치 강화 전체가 사적지인 셈인데 그래서 강화도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말한다.

 

이제, 나서기로 한 만큼 서둘러보자. 수도권에서 1시간대면 충분히 도착, 강화대교나 초지대교로 염하를 건너면서 갯벌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다리로 연결돼 있지만 섬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강화도에 도착하면서 볼 수 있는 순서대로 감상해 보자.

 

▲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그리고 거석문화

 

감상 Point 1. 강화대교를 건너 48번 도로를 가다보면 만나는 고인돌공원의 세계문화유산 강화 고인돌(일명 지석묘)을 볼 수 있다. 이곳 고인돌은 모두 150여 기 정도이지만, 그 중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70기가 세계문화유산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배자의 무덤인데, 가까이 서 본 사적 137호 부근리 고인돌은 규모가 상상 이상이다. ‘누가 묻혔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어떻게 축조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들 정도다. 거대한 돌(巨石)로 만든 옛사람들의 자취들, 영국의 스톤헨지(stonehenge)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moai) 석상 등과 가치를 같이할 정도로 유명해 지정된 것이다.

 

교과서나 일반도서 표지에 쓰이는 모델이니 눈요기 정도가 아니라 상세히 살펴보길 바란다. 규모 약 7m의 편평하게 놓인 덮개돌, 20°로 기울어져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좌우의 받침돌이 있으나 무덤방을 구성하는 앞, 뒤의 막음돌은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고인돌의 형식, 쓰임새, 운반 방법과 동원된 사람, 축조 기법과 시기, 채석장, 묻힌 사람의 남·녀 구별을 비롯해 강화 섬 전체의 고인돌 발굴조사가 이뤄져야 이곳 고인돌 문화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세계문화유산을 규명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하며, 세계의 시민이 느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답으로서 연구와 조사 활동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 사적지마다 담겨 있는 회한의 사연

 

감상 Point 2. 고인돌공원과 같이 있는 강화역사박물관과 강화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자. 강화도와 주변 지역의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궤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교묘한 콜라보를 이룬다. 자연은 인간의 활동 무대요. 무대의 주인공은 강화 섬 주민이었으니 그들의 역사인 것이다.

 

이제 다시 구 48번 도로를 타고 읍내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문화의 숨결을 느껴보자. 고려시대 몽골 침입 당시 약 40년 간(1231~1270) 임시수도였을 때 왕이 머물던 고려궁터(사적 133호)와 그들을 방어하기 위한 강화산성(사적 132호), 그리고 그 무렵 왕이었던 희종(석릉, 길정리, 사적 369호), 고종의 릉(홍릉, 국화리, 사적 224호), 원종비(가릉, 능내리, 사적 370호), 강종비(곤릉, 길정리, 사적 371호)의 능이 있다.

 

조선 왕릉에 비해 웅장하지 않지만 소박하며, 임시수도에서의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듯하다. 강화를 나오면 마지막 들려볼 코스. 강화 섬 둘레에 설치했던 5진 7보 53돈대의 해안 관방 유적 중 대표적인 곳, 광성보(사적 227호)와 덕진진(사적 226호), 초지진(사적 225호)은 염하로 들어오는 이양선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19세기 중엽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조선을 지키기 위한 군인들의 총성과 함성,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직도 초지진에는 포탄 상흔이 남아 있으니 꼭 들러 확인해보길 강권한다. 누가 ‘百聞이 不如一見’이라 했는가? 당시 사진을 보면서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 섬에서 나는 먹거리들

 

감상 Point 3. 마지막 금강산도 식후경, 강화도의 전통 특산물을 보자.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삼의 본거지인 개성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해 1953년부터 본격 재배가 이뤄진 강화인삼, 팽이모양의 둥근형으로 회백색이고 김치의 재료로 가장 보편화된 강화순무, 다른 지역 고구마와 달리 속이 노랗고 당도가 높은 속노랑고구마, 홍시나 대봉시와는 구별되며, 씨가 없고 꼭지 부분에 올록볼록한 무늬가 생기는 ‘접시감’이 맛과 건강의 일석이조를 책임진다.

 

강화도는 섬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하며 수도권에서의 접근성이 좋아 나들이하기에 부담 없다. 특히 가을 휴일이면 더욱 생각나는 고향, 그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다시 한번 추천한다. 다만, 주말에는 교통량이 많은 곳이니 서둘러 보고 귀가하는 것이 강화도의 풍류와 호감을 길게 유지하는 방법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다음은 강화도의 화려한 자연 유산을 소개한다.

 

▶▶ 김석훈은

고고학을 전공했고, 30년 넘게 고고학적 관점에서 인천지역의 섬 연구에 매진해오고 있다. 지금도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인천의 향토사 자료를 찾고, 연구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느라 바쁘다. 인천광역시사 및 강화군사 등 편찬에 참여했고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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