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재미있는 인천 6 - '노마'의 항구, 그리고 연안부두

2020.12.01 09:22:14 15면

 ‘어머니는 이른바 ‘항구의 들병장사’다. 노마는 이런 어머니를 보았다. 몰래 어머니의 뒤를 밟아 선창엘 갔었다. (중략) 목선 쌓아 올린 볏섬 위에 올라앉아서 어머니는 사, 오인 사나이들과 섞여 희롱하고 있다. 어깨에 팔을 걸고 몸을 실린 조선 바지에 양복저고리를 입은 자에게 어머니는 술잔을 입에다 대주려 하고 그자는 손바닥으로 먹으며 고개를 젖고 (중략) 어머니를 제 무릎 위에 앉히려 하고 아니 앉으려 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를 중심으로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노마는 그런 어머니를 꿈에도 본 적이 없다.’

 

‘남생이’ 소설 속의 일부 내용이다. ‘들병장사’란 병에 술을 담아 들고 다니며 파는 술장사라는 말이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로 현덕(1912~?)의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 무대가 바로 해망대산 아래 인천역 부둣가(선창)를 무대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농민 출신 도시 빈민의 세계를 어린 ‘노마’의 눈으로 포착한 ‘경이적 신인의 출현’이라는 김남천의 발문 (아문각, 1947, 남생이)에서 대찬(大燦)한 성장소설로 1988년 금기에서 벗어난 인천적 소설이다.

 

1970년대 신항으로 조성, 4년 뒤 제2선거(船渠)가 완공, 인천역 일대(해망산 아래)의 항구기능과 어시장은 연안부두로 이전하게 된다. 긴 세월 인천의 애환이 묻어 있는 역사는 막을 내리며 168개 중 유인도(島) 41개의 뱃길도 함께 말이다.

 

항구를 둘러싸고 있었던 조선소, 그리고 얼음 공장 닥지닥지 붙어있던 선구(船具)점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물 수리점만 있을 뿐 원인천이란 별칭 속에서 멍 때리고 있다.

 

허나 지워질 수 없는 역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제물포’란 말은 이곳에서 생겨난 대명사로 영원불멸이며 문학작품 속의 인천의 풍광은 흐르는 세월에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TV 채널을 돌리면 거개가 ‘트롯’의 열풍에 대한민국이 휩싸인 것 같다. 어느 방송사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 1년이 지나도록 사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하도 듣다보니 싫증이 나기까지 한다.

 

‘목포에 이난영, 인천의 이화자’란 말은 한국의 가요사를 들여다본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1918년 인천에서 태어나고 권번(용동)에서 솜씨를 닦은 이화자는 작곡가 ‘김영파’를 만나며 전국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1936년 ‘초립동’ ‘월미도’ 등 히트송을 남기게 되니 인천은 그 트로트의 시작지역이라 할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기며 인천의 노래는 야구장에서 통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헤어짐과 만남의 슬픔과 기쁨이 얽혀 있는 노래가 야구장에서 응원가로 불려진다는 ‘이별=승리’의 방정식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나 지역성을 대표하는 타이틀 곡으로 ‘부산 갈매기’는 부산의 응원가로, 목포는 ‘목포의 눈물’이고 광주는 ‘남행열차’인 것처럼 인천은 ‘연안부두’가 됐다. 1954년 박경원의 ‘이별의 인천항’이 있기는 해도 빠른 템포의 ‘연안부두’가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연안부두의 시대, 인천역 일대의 항구, 어시장의 인구는 다 옮겨 갔지만 사람 사는 냄새는 옛적만 못하긴 해도 인천의 해양 물류, 수출입의 성장은 괄목할 시대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1904년 인천의 앞바다에서 벌어진 러·일 전쟁의 시작이 된 해전은 급기야 백기를 내걸지 않은 러시아군이 자국함대 ‘바리야크’호를 폭침시키며 승무원이 순직한 사건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연안부두 해양광장에 설치됐다.

2011년 만든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이다. 2010년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한 바리야크호 함기를 러시아에 장기 임대해주며 시작된 인천과 러시아의 외교 모범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11월 인천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인 이목을 불러일으키며 말이다.

 

하여 매년 2월 이 바리야크호 승조원들을 기리는 헌화 행사가 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인천에는 이 광장이 있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인천광장이 있다.

 

해망대산 아래 인천항 앞에 있었던 러시아 영사관 그리고 연안부두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 우연보다 더한 함수가 아닐까. 연안부두에는 ‘노마’가 없다. 그 엄마가 했던 ‘들병장사’도 없다. 초겨울의 찬바람만 서성이고 있다./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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