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을 가다 11 - 장봉도

2020.12.10 08:44:12 15면

장봉도(長峰島)가 묻고 장봉도가 답하는 장봉도의 가치

 12월의 섬! 허공에서 부는 매서운 바람과 파도 소리는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게 한다.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내 주변까지 엄습한 코로나19의 유행은 심신의 피로감을 더해 준다. 힐링을 위한 따뜻하고 한적한 장소, 멀지 않고 한나절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그래서 확실한 하루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섬이 있어 소개하는 곳, 장봉도.

 

장봉도는 접근성이 좋은데다 높지 않은 산봉우리가 이어져 바다낚시는 물론 등산 애호가들의 최적지이자 하루 코스로 쉽게 다녀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게다가 예로부터 고려나 조선시대의 수도가 가까이 있었다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일찍이 이 섬의 중요성이 인정됐던 장봉도. 그 섬에 대해 알아보자.

 

▶ 체크 Point 1. 장봉도에 가려면?

 

승용차를 적극 권장한다. 인천시 중구 운서동 영종도 삼목선착장. 이곳에서 차를 배에 싣고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선편은 보통 시간당 1대정도 왕래하며, 인천시민이면 반값이다. 섬 여행에 신분증 지참은 필수.

 

장봉도의 세부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장봉도 관광안내소에서 매뉴얼을 챙겨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장봉도가 속한 북도면의 4개 유인도와 명소, 다양한 트레킹 코스(체크 포인트3 참조)의 갯티길을 소개하고 있어 자신의 체력과 시간을 보며 일정을 맞출 수 있다.

 

▶ 체크 Point 2. 섬의 지명 유래와 주변 환경?

 

행정구역,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 혹시 ‘장봉도(長峰島)’라는 섬을 들어보셨나요? 섬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어있어 붙여진 이름, ‘긴 장(長)’ ‘봉우리 봉(峰)’ 그래서 장봉도라 불린다.

 

북쪽으로는 강화도, 서쪽로는 신, 시, 모도, 남쪽으로는 영종, 용유도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강화군 제도면(諸島面)에 속해 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천군 북도면(北島面)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당시 부천군 소재 섬 지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북도면이라 명명했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북도면에 속한 4개의 섬 중 가장 넓은 면적의 맏형에 해당한다.

 

현재 이 섬의 행정구역은 장봉1~4리까지 있으며 장봉1리는 ‘옹암’, 장봉2리 ‘평촌’, 장봉3리 ‘진촌’, 장봉4리는 ‘축동’이라 부르는데 중심지는 장봉출장소가 있는 장봉2리이며 섬에는 약 1000명이 살고 있다.

 

▶ 체크 Point 3 섬 트레킹 코스와 관광 안내를 받으려면?

 

각 지역마다 둘레길을 부르는 독특한 이름이 있는데, 장봉도에서는 섬의 특성을 살려 ‘갯티길’로 부른다. ‘갯티’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조간대를 일컫는 말이다. 갯벌과 갯바위가 만나는 중간지점인 모래갯벌을 인천 섬 주민들은 ‘갯티’라 부르고 있다. 도시민을 위한 힐링과 도서민을 위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는 문화적 언어로 활성화되길 바란다.

 

현재 장봉도의 갯티길은 1코스 신선놀이길, 2코스 하늘나들길, 3코스 구비너머길, 4코스 장봉해안길, 5코스 야달인어길, 6코스, 한들해안길, 7코스 장봉보물길 등 7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각 트레킹 코스별 길이와 시간, 장소가 다르니 상황을 잘 파악해 다녀보길 바란다. 관광 안내는 장봉도 여행자센터를 이용하면 좋다.

▶ 체크 Point 4. 장봉도에 인어상(人魚像)이 있다고?

 

‘장봉도’하면 이젠 인어상이 대표적 명소라 불릴 만큼 유명해졌는데, 장봉선착장 장봉바다역 광장에 있으며 인어상과 관련된 전설이 기록돼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장봉도는 옛날부터 어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 삼대 어장의 하나로 손꼽혔다. 옛날 어느 때인지 잘 알 수는 없어도 장봉도 날가지어장에서 어느 어민이 그물을 낚으니 인어 한 마리가 걸려 나왔다. 그들은 말로만 전해 들었던 인어가 나오자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상체는 여자와 같이 모발이 길고 하체는 고기와 흡사하다. 옛 사람들은 그 인어를 측은히 여기고 산 채로 바다에 넣어 주었다 한다. 그 뱃사람들은 수 삼일 후 그곳에서 그물을 낚으니 연 삼일동안이나 많은 고기가 잡혀 이는 그 인어를 살려준 보은 때문이라 여기고 감사했다고 전한다.’

 

인어상은 작고 앙증맞게 옹암 구름다리와 작은 멀곳을 배경으로 조각돼 있으며, 관련 전설의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섬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1600년대부터이니 약 400년쯤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재 날가지(飛加地)섬은 무인도이지만 주변은 예로부터 유명한 어장이었으며 섬 이름도 물고기가 어찌나 많은지 날아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인어를 살린 어부는 그 자리에서 연일 여러 가지 크고 많은 고기를 잡았는데, 인어의 은혜라 생각하며 잘 살았고 모든 일에 선한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온 동네가 풍어제를 지내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 전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독일의 민요인 ‘롤렐라이’(요정의 바위). 이 언덕의 인어상에 매료돼 많은 배들이 침몰했다는 독일의 사연보다 인어를 살려준 어부, 은혜를 갚은 인어의 훈훈한 상생의 모습은 더불어 사는 우리사회에 영원히 간직해야 할 전설이다. 풍어로 발전하는 장봉도를 기대해 본다./ 김석훈(문학박사·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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