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10 - 함세덕 생가

2021.01.26 10:32:18 15면

 

 동구 화평동 455, 함세덕이 살았어요

 

인천에서 처음 발행된 잡지로는 1900년 ‘신학월보’로 제물포부인회가 만들었고 내리교회가 주체가 됐다. 뒤를 이어 1926년 ‘개척’, 1927년의 ‘습작시대’였고, ‘월미’가 1937년에 나왔다. 종합잡지로 문예물은 물론 다양한 필진으로 오늘날 문학사 연구에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책들이다.

 

‘월미’에 실린 시로 ‘고개’라는 작품, 함세덕의 이야기를 이 화평동에 들며 짚고 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는 초기에 시를 창작하고 후에 극작가로 변신했다.

 

유치진과 쌍벽을 이루며 서정적 리얼리즘의 작가로 인천적 연극을 남긴 인천이 자랑할 인물이다. 알려지지 않은 ‘고개’라는 시가 어떻게 탄생됐을까.

 

화평동은 구한말까지 인천부 다소면 고잔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1900년 초, 평리(平里)에서 평동(洞)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옆 동네 화촌동(花村洞) 일부가 합쳐 머리글자를 따 화평리가 오늘날의 화평동인 것이다.

평평한 지형 때문에 평동이었고 화촌동은 꽃으로 잘못 알려져 ‘꽃마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동이 합쳐 해방 이듬해부터 부르게 되었으니 팔순을 바라보는 동네 이름이다. 평리부터 셈하여 일백년을 훌쩍 넘긴 화평동의 이야기는 곧 수난 시대의 애환과 서민들의 한숨이 얼룩진 곳이다. 응봉산을 기점으로 남향바지는 그들이 거두어가고 북쪽으로 내몰린 수난 말이다.

 

‘알깡 달깡’ 경인선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가는 ‘화평철로문’은 고막을 자극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100m 떨어진 골목 어귀, 화도고개와 만석부두, 화수부두로 질러가는 소폭의 신작로 길이 열린다.

화평동 455번지, 바로 함세덕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1950년 35세의 일기로 요절한 그는 출생 후 서너 달 뒤 목포로 이사,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할아버지(함선지)를 따라 1945년 인천으로 다시 이주해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고교)를 다니게 되는 것이다.

 

집 울타리 너머 무엇이 있고 마을을 벗어나면 어떤 세계가 있을까를 그려보는 유년과 청소년기의 상상력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본능. 화도고개가 시작되는 화평동 455번지의 함세덕은 그 고개를 넘어 만석, 화수부두를 동경하며 넘나들어 눈과 귀에 앙금이 생기는 나름의 경험이 축적되어 ‘고개’라는 시가 탄생되지 않았나 싶다면 과한 유추일까?

 

고갯길 옆으로 졸망히 늘어선 판잣집, 지붕 얕은 토담집, 가다가 쉬어갈 초록의 잔디가 비탈에 미끄러지고 있는 이 봄빛에 잠들고 있는 옛 화도고개는 누나를 고개로 오라고 시 속에서 부르고 있다.

 

유년을 목포에서, 그리고 청소년기의 인천항 주변은 아름다운 자연조건과 함께 눈에 비친 식민지적 삶의 치열한 현장 속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연령의 그는 현실과 사회의 괴리가 폭넓게 관찰되는 사고의 결과물이 작품으로 탄생케 된 것이다. ‘무의도 기행’, ‘해연’, ‘산 허구리’ 등 리얼리즘적 소재는 이름다운 국어와 조화 시적(詩的) 연극세계로 승화되기에 이르렀다. 바다를 모티브로 해서 말이다.

 

누이(누나)를 애타게 호명하는 시가 두 편 있다. 한 편은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면, 죽은 누이를 애타게 찾으며 미래를 부르는 연가(戀歌)이다. 전자는 살아있는 송수권의 ‘산문(山門)’이라는 시고 후자는 함세덕의 ‘고개’다.

 

두 작품이 다 죽은 자는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살아 시 속에서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낳고 있는 것이다. 깜깜절벽의 무(無) 천지에서 건져 올린 꽃, 두 송이의 꽃은 시들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이 ‘고개’와 더불어 ‘내 고향 황혼’, ‘저 남국의 이야기’, ‘저녁’은 1935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시로 연구의 길이 열려있지 않나 싶다.

혈문(穴門)을 넘어온 화평동은 옛 골목에 대한 상념들과 수문통에서 묻어나온 갯내음이 폐부를 흔든다. 경인전철은 걸음을 재촉하며 서울로 간다. 전철소리 요란해도 해질 무렵 둥지로 돌아온 외로운 새처럼 도리어 푸근한 소리로 바뀐다.

 

455번지 함세덕의 생가는 선술집으로 변한 채 말없음표를 달고 가로등 불빛은 삶의 비의(非意)와 정한(情恨)을 부르고 있다. 망우리까지./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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