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18 - 다방에서 화랑과 주막으로

2021.05.25 12:53:21 15면

 인천은 어느 지역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많다. 138년 전인 1883년 개항이 이뤄지며 커피도 이 땅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를 들면 ‘한미수호통상조약’ 비준 문서 교환차 온 푸우트 주한미국공사가 ‘모노카시(monocacy)’호로 제물포에 도착한 시기를 계산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소설가 이상이 ‘제비’라는 다방을 낸 것은 1920년대다. 하니 예술인들의 다방 출입 이력이라면 이 연대에 맞추면 될 성싶다. 그즈음 다방 커피라면 원두를 갈아 필터로 내린 것으로 쓰고 강한 맛이 돌았다.

 

그러나 동란 이후 미국의 피엑스(PX)를 통해 즉석커피, 곧 인스턴트커피가 다방에서 판매되기에 이르렀다. 설탕과 프림을 넣어 먹는 커피로 쓰고 강한 맛은 덜하지만 커피 아닌 커피를 먹은 것이다.

 

요즈음 다방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옛날의 다방은 없고 ‘커피전문점’이라는 카페뿐이다.

 

아가씨들의 간질간질한 말솜씨에 희희농락하는 다방의 풍속도가 아닌 문화의 인천 다방은 인문학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지금의 애관극장 넘어 싸리재를 경계로 하고 동인천을 넘지 않으며 시청(현 중구청)을 못 미친 발길을 홍예문 길 절반에서 멈춘 지역 안에 앉아 있던 다방, 모두가 문화의 산실이며 지금도 남아있다면 등록될 문화재감이다.

 

미술인 5명(김영건, 우문국, 윤갑로, 이경성)이 뜻을 모아 시작된 오소전(五素展)은 고집스럽게 다방을 택하며 8회전을 끝으로 깃발을 내릴 때까지 5회전(길다방)을 제외하곤 줄곧 ‘은성다방’이라니 놀랍도록 그리운 추억의 다방이다.

 

1960년대 말까지 이어온 다방전시는 1965년 제1공보관을(신생동, 현재 어린이집) 신축함과 동시에 줄어들긴 했어도 해방 이후 다방문화는 인천문화를 일구어 냈던 것이다. 그 다방을 중심으로 흐르는 길은 자연스럽게 예술인들을 주막으로 안내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동일방직’의 기숙사 사감을 지냈던(서강일 권투선수의 장모이기도 함) 이 여사의 ‘염염집’도 지척이고 신포동 시장의 ‘백항아리’, 사동의 백대가리에 신생집, 옥천집 등 거침없이 내일을 위해 충전 (주주 注酒) 할 곳. 그뿐이겠는가, 주머니 사정이 여의하다면 ‘화선장’ ‘금용관’ ‘빳시’ 등이 또 포진하고 있으니 흐르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

 

설령 가진 돈이 없는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신포동 인심이 인천의 인심이고 명동 부럽지 않은 어느 주먹잡이는 예술인 술값 계산만큼은 넉넉히 치르고 인사 또한 깔끔하게 드리고 가는 포동포동 신포동인 것을...

 

동정 박세림의 ‘대동서숙’이며 소강 서실 또한 지척이고 무여 신경희의 한의원이며 옥계화실, 사진의 이종화 병원 역시 정강이만큼 가깝게 있어 흐르고 흐를 수 있었던 그 때 그 시절 다방 주인들은 술값까지 걱정했다 하니 사뭇 존경스럽다.

 

큰 신작로에서 소도를 따라 골목길로 접어들면 되바라지지 않은 옛 삶의 물증과 그윽한 정취가 있는 곳으로 봄에는 서양화 보러 가고 찌는 더위 달달 떨고 있는 대형 선풍기 바람에 잊은 듯 동양화보고 가을엔 서예가들의 글씨를 보던 그 다방은 좁으면 좁은 대로 정겹고 낡아서 그윽한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그곳은 인천의 심미적인 랜드마크다.

 

천천히 움직이며 새 살을 돋아낸 문화 인천은 1978년 12월23일 오석환 수묵화전을 끝으로(은성다방) 화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보관 1곳으로 전시장을 감당해 내기가 벅찬 이유, 제물포화랑을 시작으로 사임당화랑, 인천화랑, 그리고 이당기념관, 정우화랑이 생겨 번성기를 구가해 갔다. 서울의 관문 도시라는 오점을 벗고 문화의 밀물이 고인 문화 자립 도시로.

 

문화는 예(禮)요 품음이요 율(律)이요 모심이요 격(格)이고 누림이다. 해와 그늘과 구름과 옛길, 가는 사람 오는 사람과 더불어 문화는 세월을 삼키고 두터워지며 깊어진다.

 

인천 개항장에 산재했던 다방! 옛것이 분명하다. 새것은 옛것을 가려 보이지 않고 조화마저 이루지 못하니 안타깝다. 새것만을 섬겨 옛것을 헐고 부수는 어리석은 짓 그만해야지./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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