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도 

2021.05.27 06:00:00 13면

 

앞에 산이 버티고 섰다. 세찬 물살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갈 길 바쁜 나그네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산그늘 속으로 들어간다. 아득한 길을 탓해봤자 허망한 일, 묵묵히 신발끈을 동여맬 뿐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보며 들었던 느낌이었다. 부동산문제, 검찰개혁 문제 등은 고구마를 입에 털어 넣은 듯 답답하다가도 1년 남은 임기에 그래도 한반도의 숨통을 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정상회담은 역대급 성과였다. 내 기억에 정상회담에서 이런 굵직한 합의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꽉 막혔던 남북-북미회담을 뚫기 위해 판문점선언과 싱가폴 공동성명으로 출발선을 다시 맞춰놓았다. 백악관을 어지간히 설득했을 것이다. 또 백신 공동생산이나 달 탐사계획 참여도 반갑다. 미사일지침 완전해제는 상상조차 못했을만치 미래지향적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안보는 물론이고 우주로까지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대한민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과거보다 진심어린 예우와 환대를 느낄 수 있었던 점이었다. 그것은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기인했겠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정부의 균형 잡힌 외교가 지렛대 역할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미국은 중국과 마주하는 동북아에서 강해진 한국과 보다 튼튼한 동맹관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로써 남은 대통령 임기동안 한반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한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만세다!

 

이런 외교적 성과를 두고 세계는 극찬인 반면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보수야권과 언론의 태도는 차마 안쓰럽기까지 하다. “44조 조공을 바치고 어음을 받았다”는가 하면, 주호영의원은 “기업활약에 숟가락 얹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깨알같이 일본이 더 잘했단다. 정치권은 정략 상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들은 왜 “청와대의 자화자찬 모드”로 몰아가며 성과에 냉담할까? 평소 한미동맹이 무너졌다고 난리더니 동맹을 강화하자 이제는 차이나리스크가 걱정이라고 아우성이다. 자국의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획득한 성과를 이토록 폄훼하는 언론이 도데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몇 해 전 이명박-박근혜 전대통령의 방미 때는 패션감각까지 칭송하던 바로 그 언론들이다. 

 

그들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이명박-박근혜 전대통령 앞에선 다소곳이 입을 다물었고, 오바마 전대통령 앞에서는 숫제 꿀먹은 벙어리들이었다. 그러던 언론이 노무현대통령처럼 만만한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하이에나가 되었다. 하이에나는 물어뜯을 뿐 질문하지 않는다. “조국 전장관 압수수색 때 검사들이 짜장을 먹었느냐 짬뽕을 먹었느냐를 가지고 취재경쟁을 벌이던 자들이니 오찬메뉴가 다 공개된 마당에 무얼 질문할게 남았으랴?”는 한탄마저 나왔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궁금한 것이 없고, 공부하지 않으면 질문도 못하는 법이다. 걱정이다. 스스로 기득권이 된 언론의 입에서 남은 1년 동안 저주스런 말들이 얼마나 쏟아질지.. 이런 언론환경에서 이 정도의 지지율도 기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도 그는 여전히 남은 길을 걸어야 하니깐 말이다. 그래도 해낼 것이다. 바이든이 말한대로 “매우 진솔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그의 운명이자 우리의 운명이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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