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의 인천얘기 18 -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데...

2021.06.02 09:34:04 15면

 ‘삼고초려(三顧草廬)’. 중국 삼국시대, 천하쟁패에 나선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에 얽힌 유명한 고사다. 인재를 갈구하는 영웅의 절절한 심경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보다 훨씨 앞선 주(周)나라 때 주공(周公)은 손님이 찾아오면 감던 머리를 움켜쥐고, 입 안에 있던 음식을 뱉어내면서까지 맞았다.

 

천하의 선비를 잃을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토포악발(吐哺握髮)’의 고사가 여기서 비롯됐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나 나라를 다스린 위정자들은 이처럼 천하의 어질고, 능력있는 인재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없이 자신을 낮췄고, 어떠한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을 구해 등용하는 데 친소(親疎)나 귀천(貴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입현무방(入賢無方)’, 맹자에 나온다.

 

역사 이래 통치행위의 요체는 ‘인사(人事)’에 다름아니다. 용인(用人), 어떤 사람을 구해 쓰느냐에 따라 그 군주의 운명이 좌우되는 사례를 역사는 명징하게 보여준다. 인재가 많았던 시기는 흥성했고, 소인들이 득세한 때는 어지러웠다. 권력자들이 ‘참된 사람’을 그토록 곁에 두고자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시대를 사는 우리는 옛 조상이 다스리던 나라들의 행정, 특히 인사관리제도가 지금보다 훨씬 허술하고, 엉성하고, 뒤떨어졌을 것이라고 막연히 단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탄탄하고 나은 부분이 적지 않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절묘한 장치들도 눈에 띈다.

 

조선시대 관료들의 인사는 이조(문신)와 병조(무신)가 담당했다. 인사권을 관장하는 두 곳을 전조(銓曹)라 불렀다. 임금에게 인사후보자 명단을 제출한다. 이것이 의망(擬望) 또는 주의(注擬)다. 보통 3명을 추천한다.(三望) 이 가운데 임금이 한 사람을 낙점하면 인사는 이뤄진다.

 

임금은 간혹 전조의 주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특지로 관원을 임명하기도 한다. 중비(中批), 내비(內批)라 했다. 정승은 그 중요성을 감안, 따로 복상(卜相)이라는 절차를 거쳤다.

 

정안(政案) 또는 정목(政目)은 관리들의 모든 인사자료를 모은 서류철이다. 이조와 병조가 인사행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토대다. 조선은 이를 위해 관원들의 근무성적을 사정해 등급을 매기고(等第), 6월과 12월 두 차례 관리들을 평가하는 도목정사(都目政事)를 했다.

 

조선시대 인사제도의 근간은 순자법(循資法)이다. 근무기간에 따라 승진이 이뤄진다. 하지만 부대조항이 여럿 따른다. 중앙, 지방을 불문하고 만기가 되더라도 세 차례 고과성적에 세 번 상위(上位)에 올라야 승급이 허가되는 것이 한 예다.

 

잘못된 인사를 바로잡거나 제어하기 위한 장치도 다양하게 가동됐다. 대표적인 것이 서경(署經)권이다. 일종의 ‘인사적부심’이다.

 

임금이 임용을 결정한 관리에 대해 본인의 인사자료는 물론 친가, 외가, 4대 조상들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해 대간(臺諫)으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한 제도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서경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직 수행이 불가능하다. 강력한 왕권견제책이다. 조선 전기에는 모든 관리가 대상이었지만 이후 중하위직으로 완화됐다.

 

전랑(銓郞)은 이조와 병조의 정5~6품관을 가리킨다. 중간직급인 이들에게는 대단한 인사권이 있었다. 바로 언론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통청권이다. 까마득한 상관인 판서라 하더라도 여기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대신들의 권력을 통제한, 절묘한 장치로 평가되는 이 제도는 그러나 경우나 시대에 따라 권력쟁탈의 중심이 되는가 하면 특히 당쟁이 격화한 뒤에는 특정 당파의 언론장악 창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또 도덕적, 인격적으로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인물이 주요 보직에 임명되거나 승진을 하게 되면 삼사가 벌떼같이 일어나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당사자들도 자신에 대한 논란이 일면 소를 올려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물러나 근신하든지 최소한 그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당시의 상례였다.

 

조선은 국초부터 분경(奔競, 권문세가나 고위 관료에게 하는 인사청탁)을 엄격히 금지하고, 적발되면 장 100대에 1000리 밖 유배의 벌에 처했다. 이렇게 해도 실상 인사잡음은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인천이 요즘 몇 곳의 인사 문제로 시끌하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며 멀쩡히 잘 있는 공기업 사장의 강제 퇴임설에 공모공고도 나오기 전 인천시 고위공무원의 인천대 사무처장 내정설이 돌면서 해당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얼마전 자치경찰위원회 구성 때도 시장 추천 몫으로 몇몇 퇴직공무원들의 이름이 오르내려 부정적 여론이 일었었다.(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인사 관련 논란은 사실 새삼스럽지도, 인천만의 문제도, 또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논공행상에 따른 보은인사는 중앙과 지방 가릴 것 없이 날이 갈수록 더욱 빈번하고 고착화하는 모양새다. 선거가 치러진 직후 그리고 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때가 특히 잦고 정도가 심한듯 싶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인사는 옛날과 거꾸로 간다. 청문회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종합 박람회다. 철저히 친소를 가린다. 능력은 이제 더이상 발탁의 최우선 기준이 아니다. 입현무방이 아닌 ‘입현유방(有方)’이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의 순서도 자연스레 뒤바뀌었다. 위장전입, 병역기피, 세금탈루, 논문표절 등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문제로 지적을 받은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한결같이 “송구하다. 앞으로 제 자신과 주변을 잘 살피고 헤아리겠다”고 한다. ‘나만 그런가’ ‘높은 자리에 뽑혔으니 우선은 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강변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진실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실천을 위해 무진 애를 쓴 옛 관리들의 치열했던 정신이 그립다. 인천만이라도 바람직스럽지 못한 인사관행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이인수·인천본사 편집국장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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