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의 핵심이자 시초인 전 LH 직원 강모(57)씨 등 2명이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된 가운데 이들이 증거를 인멸한 것도 모자라 수사 과정에서 모르쇠로 일관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9일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와 장씨는 경찰이 수사하는 동안 PC 파일이나 메시지 내용 등을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앞서 경기남부경찰청 부동산 투기사범 특별수사대(송병일 대장)는 이들의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데 난항을 겪어 왔다.
지난 3월 시민단체의 의혹제기로 경찰 수사선상에 오른 전·현직 LH 직원 15명 중 핵심으로 지목된 강씨를 위주로 수사를 진행해 왔는데, 그가 맡아 오던 업무가 이들이 투기한 땅과 연관성이 적은 ‘토지보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찰은 지난 3월부터 이들 15명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을 수차례 단행해 PC와 휴대폰 등 유의미한 압수물을 확보했음에도 그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강씨가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시기와도 맞물렸다.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선 통상 ‘업무상 취득한 비밀 이용’ 등 구성요건이 성립돼야 한다.
경찰은 그러나 그간 확보한 압수물을 포렌식 분석한 끝에 이들의 혐의점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확신으로 전환되는 대목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강씨와 장씨가 LH의 내부 관행을 통해 투기에 용이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내용이 파악되고 있다.
강씨와 장씨는 선·후배 관계로, 과천의왕사업본부에서 함께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강씨와 친분을 쌓은 장씨는 이후 광명시흥사업본부의 상위 기관인 인천지역본부로 자리를 옮기게 됐고, 그곳에서 ‘업무파악’을 명목으로 동료들로부터 사업계획서 등을 건네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LH에서는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면 그 자리에서 수행할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관할 사업과 관련된 서류를 전달받는 보편적인 관행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비 문건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 통해 장씨는 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일하는 직원으로부터 광명·시흥 3기신도시 관련 서류를 확보했고, 서류에는 신도시 건설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업 예산이나 규모 등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이 서류를 강씨에게 전달했고, 이를 본 강씨는 장씨에게 “기정사실이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이들은 2017년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 광명시 옥길동과 시흥시 무지내동 등 4필지를 22억5000여만 원에 사들였다. 이 토지의 현재 시세는 3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수원지법 안산지원 강수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오전 10시부터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 및 농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씨와 장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같은 날 오후 늦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강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과 도주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구속 사유를 설명했다. 법원은 이들이 매입한 부동산에 대한 기소 전 몰수보전도 인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수사한 결과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지위고하 막론하고 부동산 투기가 근절될 수 있도록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