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내 새끼...나도 데리고 가거라...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생생하기만 했던 아들을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 고(故) 김동식 (52·소방경) 광주소방서 119구조대장의 어머니는 19일 오후 6시26분 하남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서 이 같이 말하며 오열했다.
김 대장의 아내도 아무 말 없이 한 맺힌 눈물을 쏟아냈다. 그의 아들과 딸은 촉촉해진 눈망울로 다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아버지의 영정사진만 묵묵히 바라봤다.
이런 가족들의 황망한 마음도 모른 채 영정 안 김 대장은 그저 누구보다 늠름한 아들이자, 아빠이자, 소방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영정 밑에는 그가 생전 현장에서 쓰고 입던 모자와 기동복이 곱게 놓여 있어 조문객들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동료 소방관들도 왼쪽 가슴에 ‘謹弔(근조)’라고 적힌 리본을 달고 하나둘씩 빈소로 입장해 그의 넋을 기렸다.
그 중 한 소방관은 한동안 김 대장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더니 쉽사리 절을 하지 못했다. 아직 그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다른 소방관도 눈물을 머금은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했다. 그는 김 대장을 향해 절을 한 뒤 유가족과 얘기를 나누다 끝내 통곡하고 말았다.
팀은 다르지만 김 대장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는 광주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사고 발생 전 제가 먼저 투입되고 난 이후 김 대장님 팀과 교대했다”며 “그때까지는 김 대장님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너무 황망하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장님은 사건 현장에서는 늘 엄격했는데, 그건 모두 동료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며 “일상생활에서는 동료들과 담배도 같이 태우고, 운동도 함께 즐기는 등 동료애가 남달랐다”고 흐느꼈다.
사회 각계각층의 조문행렬도 이어졌다. 오후 5시44분쯤 빈소를 찾은 신열우 소방청장은 “면목이 없다. 저희 직원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신 청장은 방명록에 “고인이 보여주신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우리 소방가족들은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오후 6시7분쯤 굳은 표정으로 김 대장 빈소를 찾았다. 그는 유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넨 뒤 소방청장 등 소방관계자들과 약 10분간의 대화를 나눴다.
김 총리는 방명록에 “늘 끝까지 동료들을 보살피시고 책임을 완수하시던 끝판대장 김동식님 당신을 늘 기억하겠습니다”라며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남은 우리들이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편히 쉬소서”라고 적었다.
오후 7시48분쯤 빈소를 찾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불이 활활타고 있는 현장 진압을 위해 솔선수범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하다 순직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유족과 모두에게 위로를 드린다”고 했다.
송 대표는 그러면서 “물류창고가 너무 높다 보니 화재가 발생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더라도 대부분 비닐로 제품이 쌓여있어서 물이 침투하지 못하고 화재진압이 어려운 조건이 있다”며 “유사 사례가 재발할 가능성이 큰 만큼 시급히 국회 공청회를 열어 대형물류창고 대형 화재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논의하고 이를 기초로 입법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송 대표와 함께 온 소방관 출신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눈시울을 붉혔다.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숭고한 헌신에 애도의 뜻을 표하며, 유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기 위해 회사가 모든 지원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오수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등 정치권 인사들의 조화와 근조기가 줄을 이었다.
김 대장의 빈소는 오는 20일까지 이틀간 운영된다. 장례는 오는 21일 오전 9시30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김 대장은 이천 쿠팡 덕평불류센터에서 불이 난지 6시간 만인 지난 17일 오전 11시20분쯤 화염의 기세가 다소 누그러지자 동료 4명과 함께 인명 검색을 위해 지하 2층에 진입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에 쌓인 각종 적재물이 무너져 내리며 불길이 거세졌고, 11시40분쯤 김 대장 5명은 대피 명령을 받아 즉시 탈출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 4명은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김 대장은 미처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에 소방당국은 곧바로 김 대장 구조작업을 전개했지만, 건물 곳곳에 쌓인 가연물질로 인해 불길은 점점 거세졌다.
이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 삼켰고, 이 때문에 구조작업도 건물 붕괴 등 추가 인명피해 우려로 일시 중단됐다.
이후 이틀이 지난 19일 불이 어느 정도 진화되자 소방당국은 오전 10시부터 20분간 건물 안전진단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구조대를 투입해도 이상 없다”는 결론이 나 구조작업이 재개됐다.
그러나 같은 날 오전 10시49분 입구에서 직선으로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김 대장은 끝내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 대장은 1994년 4월 소방에 입문한 27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경기지역 소방서에서 구조대와 예방팀, 화재조사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소방행정유공상, 경기도지사 표창장 수상 등 각종 상을 받으며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았고 응급구조사 2급, 육상무전 통신사, 위험물 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남다른 직업정신을 보이기도 했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김은혜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