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의 인천얘기 19 - 22년 전 김재로 영정사건

2021.06.23 08:52:20 15면

 조선시대 한 고관(高官)의 영정(影幀)이 1999년 한 해 인천 지역사회를 후끈 달궜다. 주인공은 김재로(金在魯, 1682~1759). 그는 숙종·영조 연간 대정치가요 문인학자이자 노론을 이끈 영수(領袖)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의정을 무려 네 번이나 지냈고 그의 아들 치인도 부친에 이어 영의정에 오르는 등 당대 최고의 명문거족이었다.

 

그의 영정이 매물로 나왔다. 영정을 팔아서라도 집안사정 때문에 경매로 넘어가버린 인천시 남동구 운연동에 있는 선산 일부라도 되찾고자 하는 소유주 등 후손들의 바람에서였다. 선산에는 김재로 묘도 있다.(시지정 기념물 3호)

 

한국본과 중국본 두 점인 김재로 영정은 인천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0호로 보존상태가 매우 우수하고 작품성, 미술사적 가치가 빼어나 국보급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개인 소유이더라도 지방문화재일 경우 매도과정에서 국가 또는 지자체, 박물관이 매입할 의사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이곳에 매도해야 하는 당시 문화재보호법 등 규정에 따라 소유주는 먼저 시에 매입의사를 타진했다.

 

그 때 기준으로 상당히 고가(高價)였던-시립박물관 1년 전체 유물구입비의 3배가 넘었다-매입가격과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다가 결국 영정은 인천의 품을 떠나게 돼 많은 시민들의 아쉬움과 탄식을 자아냈다. 영정은 그해 12월 삼성문화재단이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연 ‘새천년 특별기획-인물로 보는 한국미술’전 출품되면서 행방이 확인됐다.

 

‘반성’과 ‘다짐’의 말이 난무했으나 그 때뿐이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은 되풀이됐다.(글쓴이도 얼마 전 인천얘기 7편을 통해 인천이 낳은 위대한 서예가 검여 유희강과 동정 박세림, 작곡가 겸 가요연구가 김점도 선생의 사례를 지적한 바 있다)

 

자의든, 타의든 한 번 제자리를 떠난 문화유산을 되찾아오려면 시간적·재정적·정신적으로 엄청난 노력이 수반된다. 그렇게 해도 성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게 작금의 냉혹한 현실이다.

 

국가 간에 현재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문화재 반환운동을 보면 그 지난함의 정도가 어떠한가를 잘 알 수 있다. 아직도 상당량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조선왕실의궤나 저들의 법에 따라 반환이 불가능해 2년 단위 계약을 통해 임대해야 하는 어재연 장군 수자기(帥字旗)는 조상의 혼이 깃들인 문화유산조차 변변히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김재로 영정사건’이 통렬한 교훈으로는 부족했음인지 이후로도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無知), 그리고 삶의 질 향상과 정주환경 개선을 위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20여 년 간 숱한 문화유산들이 또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떠났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보듬고 아껴줘야 할 근대 역사문화유산과 찾아내야 할 흔적들이 수두룩하다. 눈에 보이는 유산들의 보존과 관리도 중요하지만 미처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거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귀퉁이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유물이나 흔적들의 발굴도 그에 못지 않다.

 

불과 100여 년 전 인천은 국내 각종 공연을 선도하는 도시였고, 당시로서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었던 성냥제조산업의 선구자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우리나라 첫 성냥공장이 세워진 곳이 지금의 동구 금곡동이었고, 이곳 수 많은 주민들은 성냥과 관련된 일로 먹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고래(대청도)와 민어·새우(덕적군도), 조기(연평도) 등 생선들의 파시로 흥청댔고 숱한 역사적 사건들이 벌어졌던 현장이 인천 앞바다 섬이었다.

 

인천시가 등록문화재 등록을 진행 중이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도시재생사업으로 멸실이 우려되는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에 따라 2019년 12월 도입됐다. 지정문화재와 달리 주변지역에 대한 규제가 없고 보조금 등이 지원된다. 건설, 제작, 형성된 지 50년이 지난 것이 대상이다.

 

시는 이달까지 중구 옛 시장관사와 자유공원 플라타너스, 수인선 협궤 증기기관차와 객차를 우선 등록한다. 당초 ‘근대 인천’의 상징성이 큰 인천항 제1부두 축항(초창기 인천항 갑문)과 인천역을 1호로 등록할 예정이었으나 소유주인 인천항만공사, 코레일이 ‘개발’을 이유로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불발됐다.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니 금명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시는 앞으로 역사·문화·예술·사회·종교·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면서 그 가치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 기술 발전 또는 예술사조 등 당대를 반영하거나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산들의 등록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의 역사와 정서와 정체성이 담긴 귀중한 문화유산이 더이상 사라지거나 우리를 떠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조상이 후손들에게 물려준 정신을 찾는 과정이자, 우리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약탈이나 도굴 등의 과정을 통해 국외로 무단 반출된 문화재 반환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혜문 스님의 말이다. / 이인수·인천본사 편집국장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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