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좁은 선반, 쌓이는 먼지…‘대형화재’ 물류창고 이대로 괜찮나

2021.06.28 06:00:00 1면

‘물건 대량 보관’ 크랙식 창고 대부분…좁은 공간, 불 옮겨 붙기 ‘딱’
창고엔 가연물 널려 있고, 먼지는 쌓이고…전기 합선되면 ‘불쏘시개’

2021년 6월17일 새벽에 발생한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 1명이 크게 다치고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거 수많은 물류창고 화재가 인재로 밝혀진 만큼 참사를 막기 위한 방안·법적제도가 마련되면서 더 이상 참사는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물류창고 화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우리 생활권 인근에 들어서고 있는 물류창고로 인해 주민들은 항시 불안하다. ‘시한폭탄’으로 전락한 물류창고, 법과 제도의 문제인지 안전의식 부족이 문제인지 경기신문이 짚어봤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물류창고 화재’…도대체 현장은 어떻길래?
<계속>

 

 

지난 23일 오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연면적 6170㎡, 높이 23.3m, 건물 3층 규모의 물류창고에 들어서자 랙크식으로 설치된 선반 사이사이로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랙크식이란 바닥에서 천정까지 높은 선반을 설치해 물건을 보관하는 방식으로, 국내 물류창고 대부분이 보다 많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랙크식 창고로 운영된다.

 

의류 90만장이 보관된 해당 물류창고 곳곳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고, 70여 대의 폐쇄회로(CC)TV는 물류창고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물류창고 화재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전기 합선에 대한 위험은 여전했고, 화재를 사전에 진압하는 스프링클러의 물줄기는 창고 곳곳에 닿기 힘든 구조였다. 

 

선반 사이 비좁은 공간에 놓여있는 멀티탭에는 주변에 설치된 에어컨, 제습기 등 수많은 전기선이 연결돼 있어 당장 과부하가 걸려 불꽃이 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또 바닥에는 종이상자, 플라스틱, 비닐 등이 널브러져 있었고, 작업과정에서 발생한 먼지들이 쌓여 있는 것도 목격됐다. 만약 전기 합선이 발생하면 먼지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돼 불길은 커지게 된다.

 

물류창고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먼지가 많을 수밖에 없어 매일 청소를 하고 있다”며 “최근 쿠팡 물류창고 화재로 분위기가 예민해져 화재 예방에 철저히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용인시의 또 다른 물류창고. 연면적 483.6㎡, 높이 9m 규모의 물류창고는 이천 물류창고 보다 더 심각했다.

 

샌드위치 패널로 된 이 물류창고에는 스프링클러를 찾아 볼 수 없었고, 창고 바닥에는 박스, 비닐 등 가연물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선반과 선반 사이는 비좁아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옮겨 붙기 좋은 구조였다.

 

특히 인근에는 다른 물류창고들이 위치해 있고 화재가 발생하면 삽시간에 불길이 번질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이 물류센터 관계자는 “요즘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로 안전에 민감한 상황”이라며 “나름대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체가 가져온 소방점검 보고서…소방당국은 사진만으로

 

그렇다면 소방당국의 점검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방당국은 소방시설 등이 관계 법령에 적합하게 설치·유지·관리되고 있는지, 소방대상물에 재난·재해 등 발생 위험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특별조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현재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업체가 자체 점검한 소방결과를 받아 관리·감독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업체별로 연간 2회 소방시설을 점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전문가들은 물류창고 화재가 대형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건물의 구조’라고 지적하며 화재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이용재 경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센터는 대형마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랙크식으로 되어 있어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이 밑으로 도달하기 어렵다”면서 “건물 자체에 가연물이 많아 불이 나기 쉽고, 끄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1월7일 이천시 호법면에 위치한 냉동물류창고 화재로 40명이 목숨을 잃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불은 지하 1층 냉동실에서 시작된 불은 우레탄 발포작업 중 발생한 시너 유증기로 옮겨 붙어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같은해 12월5일 이천시 마장면의 한 물류창고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두 화재의 공통점은 건물 자재로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한 것과 출구가 1곳 밖에 없어 인명피해가 컸다는 점이다. 소방당국이 미리 점검만 했어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창고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만큼 엄격한 소방시설 점검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서류나 사진만으로 점검을 대체하면 미흡할 수밖에 없다. 점검 범위를 확대해 실사를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더구나 현재 소방에서 조사를 나갈 때에는 업체에 사전 통보를 하게 돼 있는데, 이는 관리·감독하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라며 “소방이 불시에 점검할 수 있도록 관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김은혜 수습기자 ]

김기현 기자·김은혜 수습기자 crokim@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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