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17일 새벽에 발생한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 1명이 크게 다치고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거 수많은 물류창고 화재가 인재로 밝혀진 만큼 참사를 막기 위한 방안·법적제도가 마련되면서 더 이상 참사는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물류창고 화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우리 생활권 인근에 들어서고 있는 물류창고로 인해 주민들은 항시 불안하다. ‘시한폭탄’으로 전락한 물류창고, 법과 제도의 문제인지 안전의식 부족이 문제인지 경기신문이 짚어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잊을만하면 발생하는 ‘물류창고 화재’…도대체 현장은 어떻길래?
②물류창고 화재는 경기도만?…획일적 소방 기준‧건축 자재 규제 無
③불 난 물류창고도 지적사항 수두룩…사후약방문 대응도 동떨어져
④집행유예·벌금에 머무는 처벌수위…기업은 '경제논리'에만 초점?
<계속>
‘물류창고 화재’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할 원청이 그 책임에서 빗겨가고 있어 기업들이 여전히 ‘생명윤리’보다 ‘경제논리’에 초점을 맞춰 경영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해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발의·제정됐으나 법 시행이 늦는데다가 처벌수위가 여전히 약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30일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08년 1월7일 근로자 57명 중 40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관련 책임자들의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당시 현장에선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인화성 물질인 우레탄폼 작업과 용접이 동시에 진행됐됐으나 정작 관리감독관 배치 등 별다른 안전조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창고 관리업체 코리아냉동 현장 총괄소장 정모(당시 40세)씨와 현장 방화관리자 김모(당시 40세)씨 등 2명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된 뒤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코리아2000 냉장공무팀 김모(당시 47세)팀장과 김모(당시 37세)차장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 받았다.
그러나 정작 코리아냉장 대표 공모(당시 52세·여)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돼 고작 벌금 2000만 원을 확정 받는데 그쳤다.
지난해 4월 29일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도 마찬가지다. 이 불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화재는 우레탄 작업과 용적 작업 등을 진행하던 중 발생했다. 피해 확대 원인은 경보설비 미설치, 대피훈련 미실시 등 시공사와 감리 담당자의 안전조치의무 위반 및 공사기한 단축에 따른 부실시공 등으로 지목됐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진행된 1심 선고에서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측 팀장은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0시간을 이수 받아 실형을 면했다.
반면 물류창고 시공 업체 건우만 벌금 3000만원과 현장소장 징역 3년 6개월, 안전관리자 2년 3개월, 감리단장 1년 8개월 형이 선고됐다.
이처럼 원청과 하청을 포함해 산업재해 사고가 났을 경우 징역형 이상의 형을 집행받는 업체는 드물었고, 실형을 선고받는다 하더라도 그 대상은 대부분 하청 관계자들이었다. '어차피 처벌받지 않는다'는 안일한 인식이 사고를 재발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되자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은 탓에 안전한 작업 환경 구축이 이뤄지지 않아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발의된 데 이어 지난 1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법은 오는 2022년 1월27일에 본격 시행된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 또는 기관에게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서는 내년 1월부터 적용되나, 50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이 3년간 유예돼 2024년부터 시행된다. 중대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5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7일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또다시 발생, 소방관 1명이 숨지고 다른 소방관 1명이 크게 다쳤다. 다행히 노동자 중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자칫 큰 인명피해를 낼 수도 있는 규모의 사고였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진정으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을 앞당김과 동시에 사측 처벌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민진 민주노총 경기본부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30일 경기신문과 인터뷰에서 “ 쿠팡 김범석 창업주가 국내 법인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만 봐도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허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하는 방향보다는 쿠팡 같은 대기업의 처벌을 더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 노동계의 일관된 주장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영세업은 ‘하청’으로 이뤄져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고에 대해 하청이 책임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원청의 책임을 강화시킨다면 비합리적인 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경기운동본부도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최근 벌어진 산업 재해 사건·사고에는 ‘비용절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현장에서 노동자를 비롯한 무고한 시민들까지 사고를 당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한다거나 현장조사에 대한 보고서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어 “처벌수위가 약해 대부분 기업들이 벌금을 내고 비용절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도내 물류센터에 대한 소방법 점검 전수조사 실시, 사망재해 원청과 전문업체 사업주에 대한 엄중 처벌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및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도 획일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노동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 내용 중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맞다”며 “못 고친다고 하더라도 시행 이후 얼마나 잘 적용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도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도 많이 했었는데, 결국에는 최고 책임자까지 형사적인 처벌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최대 책임자까지도 중대재해에 책임을 지게 한다면, 그것만큼 안전에 대한 조치를 사전에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김은혜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