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의 공동선(共同善)] 탐사보도-언론이 가야 할 길

2021.08.12 06:00:00 13면

 

독일에 귄터 발라프(G.Wallraff)라는 저명한 탐사전문기자가 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통상적 취재보도의 한계를 느끼고 본격 탐사취재에 나선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 시장의 패권을 틀어쥐기 시작하던 그 시절, 인간은 존중받지 못한 채 이윤과 효율의 극대화 논리에 뒷전으로 밀려난다. 독일은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경제 성장으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그 그늘 아래서 신음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이들에 대한 인종 차별과 착취가 만연한 것이 그로 하여금 탐사보도 전문기자의 외길을 걷게 한 셈이다.

 

당시 독일은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할 자국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3D 현장은 터키와 그리스 등 빈국 출신 불법 입국자들의 몫이 되었다. 산업 폐기물과 방사능 물질 등 독일인이 기피하는 위험한 오염물질 처리는 자연스레 그들에게 돌아갔다.

 

하청과 재하청, 재재하청의 고리로 인건비를 떼어먹고 부당해고를 자행하는 티센 제철의 불법 노동현장에 잠입한 그가 목격한 것은 작업 현장에서 최소한의 노동 인권이나 안전조치가 지켜지지 않은 ‘독일의 생생한 민낯’이었다. 마치 ‘죽음의 외딴 섬’과도 같은 곳에서 현장 노동자로서 보고 겪은 진실은 르포기사로 되어 주요 언론에 연속 보도되었고,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기본적인 안전장비인 안전모, 작업화, 장갑, 방진마스크마저 지급되지 않았음이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가 취재한 ‘비참한 팩트들’은 인류의 양심에 커다란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이어진 수십 차례에 걸친 그의 필사의 현장 잠입보도를 접한 독일은 1980년대 말 노동현장에서의 착취와 인종차별, 노동법 위반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는 연방 노동법의 대대적 개정에 성공한다.

 

잠입을 위해 터키인으로 꾸민 그의 용모 위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색깔 있는 콘택트렌즈를 끼고 얼굴에는 먹칠, 가발을 했으며 일부러 독일 말씨까지 어눌하게 했던 것이다. 언론인으로서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요즘 우리 언론계에도 그런 기자들이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탐사저널리즘 뉴스타파'와 '열린공감TV'가 그 대표적 언론사이다. 이들 소속 기자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스스로 탐사보도의 가시밭길을 열어가고 있다. 흔히 이 시대 레거시미디어가 몰락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헌신은 오히려 언론의 탄탄한 새 전범을 보여주는 듯해 흐뭇하다. 이들에게 많은 시민들의 격려와 지원이 이어지고 있음이 그 뜨거운 증거이다.

 

이들의 성공은 젊은 기자들에게 시간을 다투는 속보경쟁이 언론행위의 전부가 아님을 웅변한다. 탐사보도야말로 실체적 진실의 정확한 맥락과 핵심적 본질을 알리는 최선의 길인 것이다.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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