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孤聲)]이 일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여라

2021.09.08 06:00:00 13면

 

 

조선의 3대 군주인 태종 이방원은 어린 시절부터 부친인 이성계를 따라 북방의 많은 전투에 참여한 호방한 인물이었다. 그가 당연히 왕위가 자신에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 것도 아버지를 도운 공로 때문이었다. 여하튼 곡절 끝에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된 그는 여전히 그 시절의 무인 기질로 사냥을 즐겼다.

 

즉위 4년 차인 어느 날 그가 사냥을 나갔다. 왕의 행차이므로 대소 신료와 호위무사 등 대규모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이리저리 사냥감을 찾던 그 순간 어디선가 노루가 나타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발견한 태종을 급히 말을 몰아 추적하였다. 한 손에는 활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말고삐를 잡은 형세는 영락없는 북방 무사 이방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꼬꾸라지면서 이방원은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국왕 중심의 조선에서 왕의 변고는 국가의 변고였기에 주변의 모두가 달려와 왕의 안위를 챙겼다. 다행히 왕은 큰 탈이 없이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모두가 안심하는 순간 태종의 첫마디는 “이 일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여라”였다.

 

평생을 전쟁터와 치열한 권력투쟁으로 보냈던 태종이 익숙하게 타던 말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왕으로서 체면에 관한 문제였기에 그는 자신이 낙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꺼린 것이다. 그러나 웬걸 조선왕조실록 태종 4년 편에는 그날의 행적은 물론 태종이 먼지를 털면서 했던 그 첫 말까지 적혀 있었다. 사관들이 적어놓은 것이다.

 

일찍부터 태종은 자신을 진드기처럼 따라다니면 기록을 하던 사관들을 몹시 미워했다. 눈총을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냥터까지 쫓아다니고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기록하는 그들이 미워 죽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과거엔 그들의 곧 언론이었다. 하루는 경연장에서 그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다. 태종이 화를 내며 사관들을 횡포(?)를 지적하자 경연의 시독관이었던 김과(金科)가 말했다. “인군(仁君)은 오직 하늘과 사필(史筆)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사관이란 자리는 이제 막 과거를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젊은 패기가 넘치는 자들로 비록 직책은 낮았지만 곧은 절개와 정의감으로 과감하게 직필을 할 수 있는 선비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기록할 수 있었고 그들의 기록은 하늘과 다름없이 임금이 두려워해야 했으니 사관들이 작성한 사료는 그대로 조선의 역사가 되었고 그 역사는 후세의 거울이 되는 것이 옛 어른들의 지혜였다.

 

천하의 태종도 어쩔 수 없었던 역사의 기록을 지금은 언론이 맡고 있다. 오늘의 언론은 기레기라는 모욕적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과거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기록을 남겼던 역사에서 어떤 거울을 발견할 수 있을까? 마침 언론개혁법안이 이달 27일까지 처리되기로 한 모양이다. 이미 벌써 누더기가 된 개혁법안이 여야 간의 토론으로 더욱 누더기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한 번 더 기대해 본다.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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