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공연장, 이육사 시인의 ‘광야’가 울려 퍼진다. 뒤이어 핀란드 민족주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의 ‘핀란디아’가 연주된다.
대한독립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 이육사의 시는 핀란드인들에게 같은 마음을 안겨준 시벨리우스의 곡과 만나 살아있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경기문화재단의 ‘2021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추진 민간공모 지원사업’에 선정, 공연을 펼친 광주시민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민족시인 이육사가 부른 항일노래’는 이육사의 시와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이 어우러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공연이다.
살아생전 31편의 시를 남기고 떠난 이육사, 그의 작품으로 공연을 만들어낸 김기원 지휘자는 “윤동주 시인은 정적인 느낌인 반면 이육사의 경우 행동적인 시인이라 생각했다. 이육사의 시를 주제로 잡은 만큼 시 낭송 부분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광야’ 등 5편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정된 시에 맞게 새롭게 작곡하거나 편곡을 거쳤다. 또한 오케스트라가 서양의 곡이다 보니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곡은 없었다. 그래서 곡의 이미지나 태생에 초점을 맞춰 곡을 골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한혼가’, ‘새야새야 파랑새야’, ‘거국행’ 등을 편곡하는 한편, 시벨리우스와 스메타나 등 해외 민족주의 작곡가들의 곡을 이용해 이육사의 시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시구절의 운율에 맞춰 편곡한 곡을 배경으로 무용가가 펼치는 한국무용과 이육사 시인의 시는 귀와 눈, 피부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전달된다.
이 가운데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는 오스트리아의 통치하에서 일어난 체코의 문예부흥운동을 대표하는 곡이다. 마치 일제에 억압을 받았던 대한민국의 상황과 닮아있어 더욱 가슴을 적시는 대목이다.
김 지휘자는 “이전에는 항일음악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경기문화재단의 공모를 통해 관심이 생겼고 자료 등을 찾아보며 흥미를 갖게 됐다. 이육사 생가가 있는 안동을 방문하고 많은 서적을 찾아보며 공연 구성이 이뤄졌다”며 “재단의 프로젝트가 계속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공연을 진행해 보고 싶다. 이미 그에 대한 아이디어는 구상해뒀다”고 귀뜸했다.
6개월여 준비 기간을 거치며 시인 이육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그는 “이육사라는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관련된 자료를 보며 눈물을 훔친 적도 있다”면서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한 우리 선조라는 것을 느꼈고, 의식도 많이 깬 기회인 것 같다. 독립운동가로서, 시인으로서 이육사를 알게 된 시간”이라 평했다.
펜으로 독립운동을 한 시인, 이육사. 김기원 지휘자는 이번 공연을 통해 그 혼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좌석 간 자리 띄우기를 시행하게 돼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지 못해 아쉽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공연을 본 시민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독립군가에 뒤이어 연주된 차이콥스키의 ‘1812’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시인의 삶과 총이 아닌 펜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그의 얼을 다시 재조명하고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대한의 독립을 바라는 이육사의 시에 해외 민족주의적 곡을 더해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면서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격파한 것을 묘사한 차이콥스키 ‘1812’란 곡에 대한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풍부하게 음악을 선사하기 위해 75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참가했다. 많은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좋은 반응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공연에 대한 긍정적인 연락도 받았다”고 부연했다.
광주시민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지난 2019년 창단된, 광주시를 대표하는 전문예술 공연 단체로, 광주시 문화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지역 내 부족한 클래식 공연 및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욕망이 대한민국을 집어삼켰던 시절, 총과 칼 대신 펜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이육사. 그의 소망과 바람, 혼과 열정은 여전히 시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민족시인 이육사가 부르는 항일노래’ 공연은 그 얼을 다시 한번 느끼고 되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시간이었다.
[ 경기신문 = 김도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