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의 공동선(共同善)] ‘기레기’, 조롱의 끝이 두렵지도 않은가

2021.11.22 06:00:00 13면

 

“단순히 말하고 쓴다고 모두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진실을 공정하고 이성에 맞게 정확하게 (전하고), 강자와 지배자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과 공공의 현명한 판단 자료가 되는 양질의 정보를 책임감 있고 불편부당한 자세로 제공해야 비로소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은 수없이 숭고한 생명과 정신이 피 흘려 싸운 결과로 얻어진 고귀한 이름이다.” (리영희 선집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 2020, 452~453쪽, 괄호 안은 필자가 넣음)

 

요즘 언론인들은 공공연히 ‘기레기’로 불린다. 이는 시민들이, 품격마저 잃고 불평등 구조의 개혁과 사회적 진보에 맞서는 기득권 세력과 한 패가 된 언론 현실을 풍자하며 붙여준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다. 필자 또한 언론인으로서 가없이 부끄럽다.

 

언론행태에 대한 비판은 검찰개혁 이슈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부패와 독선으로 점철된 검찰 비리에 대한 개혁 목소리에도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살아 있는 권력’으로 꼽히는 검찰, 극우 정치세력과 손을 맞잡고 시민들의 정당한 개혁 요구를 왜곡보도로 맞받아쳤다. 조중동의 보도에서는 이제 민주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마저 엿보인다. 국정농단 세력이 시민 항쟁으로 탄핵당한 지 불과 4년 남짓 만의 일이다. 역사 발전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반개혁의 전위를 바로 이들 언론, 언론인들이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정확히는 표현의 자유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쓰는 자유를 말한다.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건전하고 공정한 공론 형성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시민들한테서 빼앗은 펜과 마이크를 거악들에게만 갖다 바치는 오늘의 언론은 공론의 적(敵)이다.

 

1960년 4월 혁명 때 서울신문사가, 그리고 1980년 5·18 항쟁 당시 광주 MBC 방송사가 시민들에 의해 불 타버린 것은 왜곡보도에 대한 응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중 저항권 발동이었다. 이는 서구사회도 여러 차례 겪은 일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나치 괴뢰정부에 협조한 100여 개 언론사가 폐간과 함께 재산 몰수처분을, 수백 명의 언론인은 처형 등 심판을 받았고, 1960~70년대 독일에서 ‘슈테른’을 비롯한 일부 매체가 극우세력의 시민권 억압에 동조했다가 사옥이 불길에 휩싸이는 등 큰 화를 입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에 맞서려는 순간 언론은 존재의 모든 것을 잃는다. 때로는 민중 봉기에 제물로 바쳐지기까지 한다.

 

시인 김수영은 말한다. “신문이 지상(紙上)에서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켜야 그 사회가 실제로 폭동을 면할 수 있다.”(김수영 전집 2018, 282쪽) ‘기레기’라는 조롱을 받는 이들은 이 말의 시대적 의미를 한 번쯤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단지 당신들에게 교양과 품격이 부족한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악들과 한 몸이 되어 피의 혁명의 결실인 표현의 자유를 유린했을 때 당신들이 치르게 될 대가가 어디까지일지 가늠해 보라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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