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심우도] ‘김건희 사태’와 관객모독(觀客冒瀆)

2021.12.20 06:00:00 13면

 

주연 기주봉에게 연출자는 “이놈아, 욕하고 물 찌끄라니까(퍼부는다는 뜻) 그게 뭐냐. 웃음 터지면 코미디지 모독이냐?” 차마 입에 못 담을 욕설 더해 조진다. 여배우 조주미에게는 “연극 좋아하네. 꺼져!”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제목이 좀 있어 보였나, 신촌 76소극장 첫 공연에 표가 좀 팔렸다. 송승환 등과 소극장운동을 하던 연출가 기국서의 ‘관객모독’은 그의 의외의 똘기 폭발까지 더해 화제가 됐다. 그래도 돈벌이는 안됐다. 1978년 11월의 일.

 

관객이 느그들 구경하는 거 아니여, 배우가 저 사람들 바라보고 욕설 퍼부어 무참하게 하는 거야. 모르겠어? 저 사람들이 세상 뒤집어 보도록 판단의 새 계기와 경험을 주는 게 이 연극이여. 모독당하겠다고 돈 낸 놈이 웃으면 니는 사기여, 저런 도둑놈...

 

또래여서 가끔 들렀다. 몇몇은 통행금지 사이렌 불면 부근 내 하숙집으로 술병 품고 몰려오기도 했다. 안주는 내가 샀다. 아마 반체제(反體制)로 찍혔을 불평분자들이었다. 그게 세상에서 연극이 해야 할 역할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1966년 作)이라는 이 희곡으로 ‘저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2019년 ‘그 유명한’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한국서도) 책 팔리고 연극도 다시 무대에 올랐다던가. 전례 없이 도발적인, 싸가지 없는 무대다.

 

큰 배우가 된 기주봉은 국서의 동생이다. 욕 좀 먹기로 무슨 상관이랴. 일부러 그랬을까? 이쁘고 착한 성품 조주미는 구석에 얼굴 박고 눈물바람 하느라 어깨 들썩였다.

 

며칠 후 국서에게 물으니 ‘대개 참고 웃으며 나가는데 화내는 사람도 있다. 속으로 고마워 쾌재를 불렀다.’고 했다. ‘김건희 사태’를 보며 ‘관객모독’과 기국서의 그 얘기가 떠올랐다.

 

저런 모욕을 당하며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대통령 될 수도 있는 사람의 부인 아닌가, 후보 부인이니 다 이해해야지. 어떤 기자에게는 청와대 가면 밥 준다고도 했다는데. 온갖 어려움 극복하여 성공한 사업가이니 존경해야 맞지. 그런가.

 

김건희 원작의 이 ‘관객모독’은 판 바꿔가며 계속된다. ‘여당은 뭐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야당은 뭐라고 (대꾸)했다.’는 식의 여야 균형을 잘 유지(維持)한 보도를 보며 기국서와 페터 한트케는 뭐라고 얘기할까?

 

에이 씨, 저게 밥 먹고 할 짓이요? 어떤 기자는 ‘김건희 건’하고 (이재명) 아들 도박과 안마시술소 얘기 바꾸자는 주장도 하는 모양이든디. 허허허, 이런 세상에...

 

어떤 이는 대통령 하느라 자괴감(自愧感) 들었다고 했다. 우리 관객(유권자), 그들의 대변자인 언론과 평론은 저 ‘연극’ 보며 부끄럽지도 않나봐, 늘 듣다보니 익숙해졌나. 뺨을 쳐도, 얼굴에 침을 뱉어도 히죽히죽 웃으니 어찌 된 노릇인지. 더 모독해도 되나보다.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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