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孤聲)] TV토론. 우리는 아직 배가 고프다

2022.02.08 06:00:00 13면

 

 

1960년 9월 26일 역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이 개최되었다. 미국 인구의 3분의 1인 7000만 명이 시청하였다. 공화당의 닉슨 후보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 8년을 한 최고의 정치인이었고 민주당 후보는 40대의 무명 신인인 케네디였다. 연설에 자신이 있었던 닉슨은 아무런 예행연습도 없이 회색빛의 양복으로 출전하였고, 야심에 찬 케네디는 옅은 화장에 눈에 잘 띄는 짙은 색의 양복을 입고 나섰다.

 

케네디의 도발적인 질문에 논리적인 대응으로 시종일관 받아넘기는 닉슨은 왠지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반면 케네디는 건강한 구릿빛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으며 만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시청자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TV토론은 4차례 더 진행되었고 미국인들의 선택은 젊고 매력적인 케네디였다. TV토론을 통해 미국인은 베일에 가렸던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대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이 지난주 시작되었다. 누구는 밋밋했다, 장학퀴즈 같았다는 냉랭한 평가도 있지만 날 선 공격과 어설픈 방어 그리고 논리적 주장과 억지 주장 등 시청률 39%에 이를 만큼 관심이 집중되었다. 물론 TV토론을 보고 후보자를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은 많은 연구의 결과이고 이번 선거 역시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럼에도 TV토론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거나 판단유보 중인 유권자들의 선택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은 합동유세가 없고 언론지형도 엉망인 오늘 상황에서 후보자들의 가치관에서부터 미래 비전까지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장치로서 TV토론만큼 유효한 것은 없다. 첫 번째 TV토론에서 벌써 우리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부동산 정책은 누가 잘할 것인지, 안보와 사드의 추가 배치가 합당한 주장인지, 대장동 개발에서 이익을 얻은 자는 누구인지, 최저임금제, 주택 청약제도, 개미투자자들의 이익보호 정책,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재생에너지(RE100)의 중요성 등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미래를 위한 정책을 토론하자는 후보와 단순 사고에서 나오는 우격다짐 식 주장을 남발하는 후보가 누군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상당수의 무당층 유권자들은 첫 TV토론으로 지지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배가 고프다. 누가 통합이 아닌 갈등을 증폭시키는지,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깨고 공정사회는 어떻게 이룰 것인지, 언론개혁, 사법개혁, 재벌개혁 등 산적한 개혁은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략은 무엇인지 등 TV토론을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TV토론을 통해서 후보자를 선택하고 싶다. 형식과 공정성 등에 시비를 걸어서 토론을 거절하는 후보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TV토론은 후보자를 알고 투표하고자 하는 국민의 권리이다. 따라서 국민의 명령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명령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명령을 거부한 정권을 종식시킨 국민을 잊지 말기 바란다.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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