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회복보다 기쁜 일 어딨겠냐"…4·3평화공원에 벚꽃도 활짝

2022.04.03 10:31:24

제74주년 희생자 추념식서 유족들 묘비 찾아 간단한 제사

 

"억울한 누명을 쓴 형님이 70여 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 회복이 이뤄졌지. 이만큼 기쁜 일이 어딨겠어."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은 서명진(89) 씨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얼굴로 이같이 말했다.

 

서씨는 "1946년 가을께 당시 18살이던 형님을 무작정 군경이 끌고 갔다"며 "거기에 집까지 불타면서 혈혈단신이 됐다. 아직도 형님이 무슨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천형무소로 끌려갔는지 모른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서씨는 "나중에 분가를 위해 호적을 확인했을 때, 그때야 형님이 사망한 것을 알게 됐다"며 "다행히 지난해 재심 재판에서 형님이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해 기쁘다. 나머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서둘러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씨는 4·3 당시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형님 서용호 씨를 잃었다. 서씨가 15살 때 일이다.

 

어머니가 같은 해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 형님까지 행방불명되면서 서씨는 말도 못 할 상실감을 느끼고 살았다.

 

유족 부춘자(78) 씨는 남편과 함께 이른 오전부터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았다.

 

그는 4·3 당시 군경에 끌려가 행방불명 된 아버지 부태진 씨에게 제를 올리기 위해 떡과 과일 등 갖가지 음식을 준비해왔다.

 

그는 "4·3 때 아버지가 밭에서 일하며 먹을 음식을 싣고 오겠다고 하신 뒤 자취를 감췄다"며 "당시 아버지와 함께 갔던 할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시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그는 "결국 어머니는 매일 군경이 '아버지 내놓으라'며 윽박지른 탓에 화병으로 돌아가셨다"며 "최근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이 이뤄지면서 기쁘긴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 시체를 찾지 못해 억울하다"며 가슴을 쳤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전면 개정이 이뤄진 뒤 처음 맞은 4·3 희생자 추념식 날은 예년과 달리 화창하고 따스했다.

 

매년 유족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구슬프게 울어댔던 까마귀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활짝 핀 목련과 봉우리를 피기 시작한 벚꽃이 유족을 반겼다.

 

행방불명인 묘역 인근 위패봉안실에도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남편과 함께 위패봉안실을 찾은 양수자(80) 씨는 떨리는 손으로 배와 바나나를 꺼내 접시에 올리고, 술을 따랐다.

 

양씨는 "매년 4·3 때마다 간단히라도 제를 올리려고 위패봉안실을 찾는다"며 "몇십 년을 왔지만, 여기만 오면 그때 그 기억으로 심장이 떨린다"고 말했다.

 

양씨는 "억울하게 돌아가셨던 아버지는 지난해 재심 재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하지만 여전히 주변을 보면 호적이 뒤죽박죽돼 재심 신청도 힘든 유족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올해 초 4·3특별법 전면 개정에 발맞춰 앞으로 4·3 문제를 명확히 밝혀 남아있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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