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기다리던 남편, 모친 찾던 교포도 부랑인으로 구금"

2022.04.12 07:55:03

권위주의 정부 시절 시설 실태조사…"도시하층민 '부랑인' 취급해 마구잡이 단속"

 

권위주의 정부 시절 평범한 이웃들이 '부랑아'로 취급돼 집단수용시설에 격리됐다는 국가 기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수용해 자립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운영됐던 보호시설 중 일부는 도시하층민을 마구잡이로 수용하는 시설로 기능한 정황이 기록으로 확인된 것이다.

 

12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집단시설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에는 연구진이 광복 이후부터 1993년까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과 강원권의 11개 집단수용시설을 대상으로 자료 분석 및 면접조사를 벌인 결과가 담겼다.

 

연구진이 확보한 입소자 입소카드에 적힌 입소 경위를 보면, 경찰이나 공무원의 무분별한 단속으로 시설에 수용된 사례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1941년생 재미교포인 A씨는 1984년 모친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온 뒤 전국을 배회하다가 시설에 끌려간 뒤 2년이 넘는 기간인 840일간 머물러야 했다.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나 퇴근길에 단속에 적발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84년 당시 45세였던 홍모씨는 당일 일거리가 없어 역전을 배회하다 친구를 만나 술 한잔을 마신 뒤 역 광장에 머무르다 단속에 걸려 352일 동안 시설에 갇혔다.

 

이 밖에도 1986년 당시 44세였던 이모씨는 수원역에서 부인의 퇴근을 기다리다가 단속돼 118일간 시설에 머물렀고, 뚜렷한 근무지가 있던 한모(당시 30세)씨도 1986년 직원들과 음주 후 귀가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 단속돼 101일간 시설에 있어야 했다.

 

연구진은 "사례 중 일부는 노숙이나 구걸 등 행위와 결부된 경우도 있었지만, 단순히 길을 잃거나 퇴근길 등 '부랑' 행위와 결부돼있지 않은 경우 역시 상당수 눈에 띄었다"며 "연고가 확인된 이들 일부는 상당 기간이 지나서야 연고자에게 인계됐고, 일부는 시설에서 도주해 '무단이탈'로 처리됐다"고 했다.

 

이런 단속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부랑' 인구를 관리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정부가 구제나 복지 대신 이들을 격리해 수용하는 편리한 방안을 택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특히 5·16군사정변 이후 군사정부 하에서 단속과 수용 중심 부랑인 행정은 더욱 강화돼,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는 경찰과 공무원에 의한 일제 단속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연구진이 확보한 집단수용시설 4곳의 연도별 입소 경위를 보면, 1960년대 이후 집단수용시설에 들어온 이들의 대다수는 경찰과 공무원 등 공권력에 끌려온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시설별로 전체 입소자의 최소 63%에서 최대 87%는 가족 등이 있는 연고자였다.

 

이번 연구를 이끈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국가가 보호와 사회 복귀를 위해 집단수용시설을 운영했다면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필요했지만, 아무런 체계도 갖추지 못한 시설에 사람을 가두면서 그 내용은 폭력으로 채워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당시 공공·민간위탁 시설에 수용된 이들 중 대다수는 부랑인이 아닌 도시하층민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며 "국가에 의해 시설에 끌려가 인권침해를 당한 이들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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