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수사·기소 분리, 개문발차…형사사법체계 대변화

2022.04.24 09:11:08

1997년 대선 '검찰 권력' 분산 공론화…文정부 출범후 급물살
尹당선·한동훈 법무부 장관 지명 등 정치 지형 변화도 영향…준비 없어 혼란 우려

 

준비는 안 됐지만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은 쏘아졌다. 목표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주어진 시간은 국회 사법개혁특위 출범 후 1년 6개월.

 

25년간 형사사법체계 개편의 '뜨거운 감자'였던 수사·기소 분리가 여야의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로 일단락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은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 범위를 축소하고, 사개특위 구성 후 1년 6개월 내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가 끝나면 직접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 검찰이 시정조치를 요구한 사건,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에 대해서는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보완수사가 가능하다. 다만 공수처 공무원의 범죄는 수사할 수 있게 했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중재안에 따른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내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되면 일반적 범죄 수사는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생 중수청이 전담하고, 검찰은 보완수사와 공소제기·유지 역할만 담당한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하면서 경찰에 보완수사를 지시하는 현행 형사사법체계는 70여년만에 대변화를 맞게 된다. 검찰은 수사 주체에서 완전히 베제된다.

 

과거 검찰은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 정보기관이 조작한 공안 사건의 조력자 노릇을 하며 공안 검찰로 비판받았다. 막강한 수사·기소 권한을 휘두르며 권력의 '사냥개'를 자처해 정치 검찰의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검찰의 기소 독점을 깨뜨리고 수사권을 빼앗는 일은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의 숙원이기도 했다.

 

수사·기소 분리를 염두에 둔 수사권 조정은 군사 정권이 막을 내린 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정치권에서 논의된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는 공수처 설치, 자치경찰제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출범 후 경찰을 중심으로는 민생범죄에 대한 수사권 독립 주장이 나왔으나, 법무부와 검찰의 반대로 공약을 실현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도 2004년 '검·경 수사권 조정 협의체'를 발족하고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제한, 민생범죄에 대한 경찰의 독자적 처분 권한 부여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검·경간 갈등이 확산하면서 결국 조정에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사개특위)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논의했고, 일부 범죄에 경찰의 독자적 수사 개시권을 인정하는 등의 법률 개정이 이뤄졌다. 2011년 김준규 검찰총장은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지지부진했던 수사권 조정 논의는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정부는 2018년 6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모든 사건에 대한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수사권 조정안을 사개특위에 제출했다.

 

문재인 정부의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가능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으로 한정됐다.

 

이같은 내용이 담긴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은 2020년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 1월 1일부터 시행,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고위공직자 부패 범죄 수사를 전담할 공수처까지 출범하며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깨뜨렸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사태, 채널A 사건 등을 계기로 대검찰청과의 관계가 악화하자 '검수완박'을 전제로 한 검찰개혁론을 재차 밀어붙였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대립하다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고 일갈하며 사퇴한 후 정계에 입문,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민주당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검수완박'의 불을 지폈다.

 

민주당은 검찰의 조 전 장관 일가 수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부실수사 의혹 등을 거론하며 검찰 조직을 향해 공세를 이어갔다.

 

지난 7일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사보임되면서 정권 임기말 검수완박 입법은 현실로 다가왔다.

 

이는 김오수 검찰총장, 고검장·검사장 등 고위 간부들부터 일선 검찰청의 평검사들까지 일제히 회의를 열고 검수완박 반대 입장을 내는 등 검찰 조직의 집단적 저항을 불러왔다.

 

그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 정치적 중립성 논란 등에 대해 반성하고 자체 혁신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성론도 검찰 내부에서 나왔지만, 민주당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이미 늦었다.

 

대검은 지난 21일 특임검사제 확대, '수사의 공정성과 인권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정례화 등을 담은 대안을 국회에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22일 박 의장이 검수완박을 전제로 한 중재안을 제시하고, 국민의힘에 이어 민주당까지 이를 받아들이면서 검찰의 사활을 건 집단 반발은 2주만에 무위로 돌아갔다.

 

중재안을 토대로 한 개정 법률은 여야 합의대로 본회의를 통과해 5월 3일 국무회의에서 공포될 전망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충분한 준비 없이 일단 검찰 힘부터 빼고 보자는 전제로 출발하는 수사·기소 분리가 불러올 부작용과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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